菩提方便門講義 (2025-10-30)
人生이란 存在論입니다.
그러면 存在라고 하면 내 눈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다 存在이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이 다 存在입니다.
즉, 내 意識이 내 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色聲香味觸法을 表象하는 것입니다.
그 表象物 모두가 다 무엇입니까? 存在입니다.
그러므로 存在란 宇宙입니다.
宇宙입니다.
그러면 그 宇宙, 그 存在에 대해서 사람이 열 명이면 宇宙 에 대한 表象物이 열 개입니다.
모두 다르게 表象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열 명이면 열 개의 宇宙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單子論的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 世上에는 無限數 의 單子가 있고,
그 모든 單子가 宇宙를 表象합니다.
그런데 表象되는 그 表象物이 바로 宇宙인데, 그것은 單子數만큼 많습니다.
그리고 單子數만큼 많기 때문에 똑같은 單子는 없으니,
宇宙는 無限數가 되어 버립니다.
이제 그러한 前提下에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表象을 하느냐 하는 것에는 多樣한 次元이 있습니다.
아주 수준 낮은 衆生이 表象할 때는 수준 낮은 表象物 로서의 宇宙가 나옵니다.
부처가 宇宙를 表象하면 높은 水準의 宇宙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 宇宙에 대한, 存在에 대한 表象物 로서 世上에 周知시킬 만한 價値 가 있는 表象物 宇宙論이 있는데,
그 宇宙論은 바로 菩提方便門입니다.
288字의 菩提方便門은 바로 훌륭하고 次元 이 아주 높은 存在論이요 宇宙論입니다.
그러면 우리 金陀大和尙을 據點으로 해서 淸華 큰스님이 그 法을 世上에 알렸고,
지금은 念佛禪이라는 이름으로 傳達을 하고 있는데,
우리 큰스님이 傳達하고자 하는 그 念佛禪 內容 은 바로 菩提方便門의 解說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菩提方便門이라고 하는 存在論, 宇宙論 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結論부터 이야기하자면 空性相一如 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宇宙를 空이라는 觀點으로 보게 되면 宇宙는 텅텅 비어서 없습니다.
말하자면 量子物理學적으로 생각해 보면, 만물은 量子인데 量子는 에너지일 뿐이니까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없음의 哲學이 바로 空性相一如의 空哲學 입니다.
그런데 또 宇宙는 없다는 側面이 있는가 하면, 없는 그것이 虛無하게 없는 것이 아니라
無限한 깊이, 無限한 크기의 에너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性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空이라는 觀點으로 宇宙를 보는 空法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空法界는 다만 빈 것이 아니라 無限한 에너지로 되어 있는데, 그 에너지는 性界입니다.
性宇宙입니다.
그래서 空性입니다.
그다음에 그 텅 비고 에너지가 가득한 그곳에는 無數한 아이템이 꽉 차 있습니다.
그 無數한 아이템을 菩提方便門에서는 '내로 緣起緣滅의 無色衆生과 외로 二元性數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鱗蟲乃至蠢動含靈의 有情衆生 과의 一切衆生을 性의 無風金波自湧認海中鷗로 觀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無限한 아이템인 이 宇宙, 그것은 無限 히 큰 바다에서 波濤가 치는 것과 같습니다. 바다에서 無數한 물거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물거품에 譬喩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無數한 性의 작용을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空은 淸淨法身毘盧遮那佛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性은 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無數한 아이템, 그것은 性의 無風金波自湧認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입니다.
千百億化身이니까, 아이템은 먼지 하나까지 전부, 사람은 勿論이고 化身 인 釋迦牟尼佛입니다.
모기도 釋迦牟尼佛, 파리도 釋迦牟尼佛, 먼지도 釋迦牟尼佛입니다. 그래서 釋迦牟尼佛이 아닌 아이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宇宙는 그냥 부처입니다.
그래서 法身佛, 報身佛, 化身佛이라고 합니다.
그럼 化身은 千百億化身이고, 法身은 텅 빈 하나, 텅 빈 法界佛이고,
두 번째 報身은 에너지로 가득한 性의 佛이고,
無限數의 아이템 側面으로 볼 때는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어서,
이 宇宙는 온통 부처입니다.
온통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로서 부처를 觀하면서 存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宇宙 全體가 否定할 만한 것이나 성스럽지 않은 것이 1g도 없습니다.
全體가 성스러움입니다. 全體가 부처입니다.
그것을 空性相一如라고 하는 三位一體式으로 딱 定義해서 드러내신 분이 金陀 大和尙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金陀 大和尙의 弟子 입니다. 弟子라면 宇宙論에 있어서 空性相一如라고 하는 그러한 體系로 觀照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큰스님의 念佛禪 弟子라고 할 것 같으면 菩提方便門을 注目해야 하고,
菩提方便門을 注目했다면 얻어낼 수 있는 結論 은 무엇입니까?
宇宙가 一心法界인데, 이 一心法界란 空이요 性이요 相이요 一如라는 것입니다.
空은 淸淨法身毘盧遮那佛, 性은 圓滿報身盧舍那佛, 相은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부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統合되어진 一如이니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래서 念佛禪 弟子가 그런 高尙한 工夫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工夫를 먼저 잘 읽고 熟讀하고, 要義 , 즉 뜻을 理解한 다음에,
熟讀 要義한 다음에 이것을 觀하고 念 하라고 工夫 案內를 그렇게 전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菩提方便門을 中心으로 한 念佛禪 弟子가 一次的으로 할 일은 熟讀 입니다.
우리 큰스님께서는 菩提方便門을 千番이고 萬番 이고 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熟讀입니다.
그러면 熟讀하면 熟讀의 結果物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뜻이 理解가 될 것입니다.
뜻을 理解했으면 理解된 뜻을 거듭 새겨서 觀行 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念佛禪의 行法이자 工夫法입니다.
그래서 그 空性相一如를 부처님 西方極樂淨土의 이름인 阿彌陀佛 로 體系化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空性相一如인데, 一如는 佛이고, 空은 '타'이고, 性은 '미'이고, 相은 '아'입니다.
그래서 阿彌陀佛로 體系化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結論에 가서는 阿彌陀佛을 부르면, 이 阿彌陀佛 노래는 바로 宇宙의 노래입니다.
宇宙의 노래 阿彌陀佛을 하고 阿彌陀佛 三昧에 들어가서 이 마음이 그대로 阿彌陀佛이 되게 해 버려라. 이것이 工夫 길입니다.
이렇게 멋있는 門中에서 내가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 境遇는 菩提方便門의 空性相一如思想 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人生의 만남이라면 菩提方便門 과의 만남이 最高 중의 만남이라고 念佛처럼 이야기해 왔습니다.
菩提方便門과의 만남은 人生의 만남이며, 最高 , 最奇, 最終의 만남입니다.
最高의 만남, 最奇의 만남, 最重의 만남이라고 할 정도로 내가 그 菩提方便門을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阿彌陀佛을 부르면서 空性相一如를 觀照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注目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阿彌陀佛은 西方極樂淨土 의 教主입니다.
그래서 그 教主 이름 阿彌陀佛을 부르고 있으면 누구나 極樂에 간다고 되어 있는 것이 淨土三部經의 가르침입니다.
그럼 우리 큰스님의 菩提方便門은 自力門 쪽입니다. 他力으로 阿彌陀佛을 부르면 極樂에 가버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菩提方便門 自體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큰스님 立場에서 自力門으로 阿彌陀佛 을 부르면서 空性相一如가 完全히 體化되려고 하면,
뜻은 너무 좋지만 그것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잡지를 잘 못해서 다시 멍해지고 도리어 헤맬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리어 絕對多數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阿彌陀佛 열 번만 하면 極樂에 가는 것이니 阿彌陀佛만 불러라, 그러면 極樂 간다"라고 가르쳐 버리면 菩提方便門을 離脫해 버리게 됩니다. 他力門으로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菩提方便門은 自力門입니다.
그런데 큰스님은 또 한쪽에 그 他力門的인 가르침이 손짓을 했던 것입니다.
뜻은 좋으나 따르지 못할 絕對多數 사람들에 대한 憐憫之情이 일어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因緣 따라 他力門으로 해서 阿彌陀佛 을 부르고 있으면 極樂에 가버리니 "阿彌陀佛을 해라"라고도 살짝 힌트를 주고 싶은데,
힌트를 言語化시켜서 힌트해 버리면 따르는 弟子들 立場 에서 얼마나 複雜하겠습니까.
그러니까 露骨的으로는 하지 못하고 그냥 淨土三部經을 飜譯해 내셨다고 봅니다.
그게 큰스님께서 菩提方便門을, 왜 自力門인 空性相一如思想의 가풍 속에서 淨土三部經을 飜譯 해 내셨을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모릅니다. 나만 압니다. 나만 그 思想을 압니다.
나는 私的으로 나누는 過程에 큰스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 혼자 '큰스님이 淨土三部經을 飜譯한 뜻은 어디에 있을까' 할 때, 내가 말한 그 마음이 큰스님 背景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스님의 慈悲心 때문에 그 飜譯物이 나왔다고 내가 解釋을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解釋하고 있는 이대로를 내가 큰스님한테 直接 들었다고 꼭 말해 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팩트 次元에서는 거짓말이 되어 버리니 곤란한 일입니다.
아무튼 큰스님이 淨土三部經을 왜 飜譯을 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큰스님께 直接 들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분은 큰스님의 意中을 알 것이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런데 나는 압니다.
무엇이냐고 이야기하려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