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기

나는 1980年년부터 只지今금까지 40年년 間간 同동事사攝섭 이라는 集집團단敎교育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敎교育육해왔습니다. 프로그램 內내 容용은 正정體체, 大대 願원, 修수心심, 和화合합, 作 작善선이라는 삶의 5대원리를 理이論논 的적으로 깨닫는 것과 그 理이論논을 實실 習습으로 體체驗험하는 것입니다. 超 초宗종敎교的적인 프로그램이어서 佛 불敎교徒도만이 아니라 基기督 독敎교, 天천主주敎교 , 圓원佛불敎교 等등 의 敎교徒도들은 勿물論논 많은 聖성職직者자가 參참 與여했고, 初초等등生생 으로부터 80 이 넘은 老로翁옹까지 3 萬만餘 여 名명이 5 泊박 6 日일 課 과程정을 盛성滿만해 왔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相상談담 從종事사者 자들도 同동事사攝섭에 參참 與여하시어 다양한 팁들을 얻어가셨으면 합니다.

고맙게도, 相상談담家가들의 모임에 招초 待대되어 相상談담에 關관 해 이야기하게 되어 기쁩니다.

바라건대, 相상談담家가들이 많은 이의 苦고 痛통과 어려움을 解해決결해 주어서 天천下하의 良양場장力력이 高고揚 양되었으면 합니다.

相상談담이란 相상談담家 가가 來내談담者자의 問문 題제를 解해決결해 줌으로써 來내 談담者자의 幸행福복 增증進진을 돕는 過과程정 일 것입니다. 이러한 重중大대 過과程정 을 擔담當당하고 있는 相상談담 家가가 갖추어야 할 人인品품 條조 件건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相상談담家가라고 하면 世세 上상 사람들이 不불幸행의 那나 落락에서 벗어나 幸행福복의 언덕으로 건너가도록 돕는 者자라고 생각할 때 相상談담家가라면 무엇보다 于우先선 스스로 幸행福복1)해야 할 터입니다. 그래서 相상談담家가 의 人인品품 條조件건 을 묻는다면 그 0 番번이 幸행福복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여, 이番번 에 여러분께 말씀드릴 主주題제를 幸행福복 (解해脫탈)으로 잡고 幸행福복 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理이論논을 더해볼까 합니다.

  •   1) 좁은 意의味미의 幸행 福복은 願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所소有 유될 때) 經경驗험되는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幸행 福복의 外외延연을 넓히면 解해脫탈(對대象상에 對대한 執집着착하는 마음이 놓일 때 經경驗험되는 걸림 없는 自자由유 感감)을 아우른다.

1. 只지今금여기 바로 幸행福복을 누리고 있는가? 《卽즉幸행》

나는 眞진正정 世세上상에 있는 모든 存존在재가 幸행福복하기를 빕니다. 幸행福복이란 좋은 느낌입니다. 기쁨이요, 氣기分분 좋음입니다. [가슴 마음]이 좋은 것을 幸행福 복이라고 하지요. 느낌은 스스로 存존在재할 수 없습니다. 恒항常상 어떤 條조件건에 依의해 드러납니다. 幸행 福복이라는 느낌은 願원하는 것이 成성就취되고 所소 有유될 때 일어나는 느낌이지요. 正정確확한 表표現현으로는 願원하는 것이 成성就취되고 所소 有유되었다고 생각할 때 隨수伴반되는 느낌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 認인識식, 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未미來래 에 이루어질 所소有유, 成성就취 度도 있지만, 이미 所소有유되고 成성 就취된 것들이 넘치고 있다는 事사實실입니다. 同동事사攝섭에서는 이미 있는 것을 旣기 存존이라 하고, 이미 이룬 것을 旣기成성, 未미來래에 다가올 成성就취는 未미成성이라고 합니다. 幸행福복을 論논하는 자리라면 대단히 重중 要요한 槪개念념입니다.

旣기存존
──
旣기成성
──
未미成성

다시 말하면, 이미 넘치는 旣기存존, 旣기成성 의 所소有유 (成성就취 ) 속에 있으니 이미 넘치는 幸행福복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認인識식이 確확然연 해지는 程정度도만큼 幸행福복 은 完완成성되는 것입니다. 없다는 생각은 憂우鬱울을 부르고, 있다는 생각은 豐풍饒요感감, 곧 幸행 福복을 부르는 것이지요.

不불幸행이니, 幸행福복이니, 解해脫탈이니를 論논하는 자리라면 最최 優우先선으로 [幸행不불 幸행三삼段단階계 法법則칙]을 理이解해 하는 것이 좋습니다. 不불幸행, 幸행福복 , 解해脫탈이란 스스로 存존在재 하는 것이 아니라 恒항常상 무엇과의 關관 係계狀상況황에서 빚어지는 느낌 現현象상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關관係계 狀상況황을 살펴보면 세 段단階계 로 整정理이됩니다.

幸행不불幸행 三삼段단階계法법 則칙

自자信신의 意의 識식이 對대象상과의 關관 係계狀상況황에서

  • 《1》否부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否부 定정的적인 느낌(不불幸행 )이 經경驗험되고,
  • 《2》肯긍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肯긍 定정的적인 느낌(幸행福복 )이 經경驗험되며,
  • 《3》超초越월的적으로 생각하면 걸림없는 느낌(解 해脫탈)이 經경驗험된다.

이 《1》, 《2》, 《3》을 [幸행不불幸행三삼 段단階계法법則칙]이라 합니다. 不불幸행해지고 싶다면 否부定정 的적으로 생각하면 되고, 幸행福복해지고 싶다면 肯 긍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되며, 解해 脫탈을 願원한다면 肯긍否부 定정의 생각을 止지揚양하면 됩니다. 佛불敎교를 中중道도敎 교라고도 하는 데 中중道도란 바로 肯긍 否부定정의 止지揚양을 意의味미합니다.

只지今금 主주題제는 幸 행福복입니다. 三삼段단階계 法법則칙中중 第제 2 段단階계입니다. 이 메시지를 接접하고 있는 여러분은 只지今금 여기, 바로 幸행福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先선生생님이나 聖성職직 者자나 相상談담家가 라면, 또 어느 程정度도 修수行행 을 하신 分분이라면 이 물음에 自자信신感감 넘치게 ‘그렇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只 지今금 여기, 바로 穩온全전한 幸 행福복으로 臨임在재할 수 있는 祕 비訣결이 무엇일까요?

다음 세 가지를 確확實실히 하면 됩니다.

  • 《1》이미 넘치는 幸행福복 속에 있음을 깨닫기(이해하기, 認인 識식하기).
  • 《2》위(位위) 《1》을 깨닫는다고 해도 意의識식圈 권 또는 潛잠在재意의識식 圈권, 無무意의識식 圈권에서 無무數수히 깨달음에 相상 應응하지 못하는 否부定정的적 생각과 否부定정的적 情정 緖서를 許허容용하고 있음을 自 자覺각하기.
  • 《3》위 《2》가 現현實실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1》로 돌아가기입니다. 깨달음 《1》을 反 반復복觀관行행하는 것입니다. 곧 具구體체的적으로 豐풍饒 요 目목錄록, 곧, 旣기存 존과 旣기成성을 確확認 인하는 目목錄록을 만들어 이미 넘치는 所소有유, 넘치는 幸행福복 속에 있음을 瞑명想상 觀관行행하는 것입니다. 豐풍饒요 目목錄록은 一일旦단 旣기存존의 것들, 旣기成성의 것들입니다. 몇 番번 程정 度도 慣관行행해야 할까요? 多다 多다益익善선입니다.

幸행福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寸촌鐵철 的적 말씀들을 思사惟유하고 吟음 味미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幸행福복이란 願원하는 것이 所소 有유(成성就취)될 때 經경 驗험되는 좋은 느낌(기쁨, 氣기分분 좋음, good feeling)이요, 解해脫탈이란 執집着착 하던 것을 놓을 때 經경驗험되는 개운한 느낌이다. 幸행 福복이나 解해脫탈이나 good feeling이라는 點점에서는 같다.
  • 幸행福복은 準준備비하는 幸행福복이 아니라, 바로 只지今금 누리는 幸행福복이라야 한다. 勿물論논 準준備비하는 幸행福복이 안 重중要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 世세上상 사람은 一일旦단 둘로 나뉜다. 只지今금 여기, 自자身신 의 窮궁乏핍에 注주目목 하고 있는 사람과 自자身신의 豐풍饒요 에 注주目목하고 있는 사람이다. 좀 더 正정 確확하게 表표現현한다면 0.01%圈권 사람을 除제 外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一일旦단 程정度도의 差차異이가 있을 뿐 窮궁乏핍注주目목型 형에서 穩온全전히 自자由 유로울 수 없지 않나 생각한다. “只지今금 여기, 穩온全전하게 幸행福복 하냐?”고 다그쳐 묻는다면 窮궁乏핍에 注주目 목하고, 窮궁乏핍感감을 느끼고 있는 程정度도만큼 한결같이 ‘나는 XX 等등으로 幸행福복하지 못한데~~~’ 할 것이다. 窮궁 乏핍注주目목形형 의 사람들은 패턴的적으로 이러한 窮궁乏핍型 형이나 憂우鬱울型형에 묶여 있다. 이때 사람이라면 當당然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便편들어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窮궁乏핍 狀상況황 이라는 事사實실이 있다면 그것에 相상應 응하는 行행動동이 있을 뿐 窮궁乏핍感감에 시달릴 일은 아니다. 金금 剛강經경을 아는 이라면 應응無무 所소住주而이生생 其기心심이라는 삶의 指지針침 에 머물 것이다. 窮궁乏핍型형 사람이라면 다음 한두 寸촌鐵철이 빛을 發발할 것이다. [만큼 哲철 學학]이나 [半반컵 사이다의 原원理 이]이다. 어떤 窮궁乏핍 狀상 況황, 不불幸행 狀상況황이라도 視시線선을 이미 있는 豐풍饒요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만큼 오케이인 狀상況 황이요, 《半반컵》이나 있는 오케이 狀상況황인 것이다. 만큼 哲철學학 의 態태度도는 絶절對대 幸행福복이라는 頂정上상 을 向향해 가는 道도程정에서 緩완 衝충地지帶대가 될 것이다.
  • 누리며 나아간다. 찡그린 얼굴로 걸어가는 것과 微미笑소 지으며 걸어가는 것의 差차 異이에서 삶의 重중大대한 原원 理이 하나를 얻어야 한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씹으면서 일터에 나가는 사람과 이미 지니고 있는 豐풍饒요(所소有유,成 성就취)를 確확認인하고 누리면서 일터에 나가는 사람이 原원理이的적 次차 元원에서 差차異이가 있음을 確확 然연히 認인識식하는 것 自자 體체가 삶의 한 智지慧혜이다.
  • 豐풍饒요 目목錄록을 만들어 吟음味미하고 나눈다. 豐풍饒요는 생각해 볼수록 自자身신을 기쁘게(幸행福복하게) 하는 旣기存존 , 旣기成성의 것들이다. 同동事사 攝섭에서는 魂혼 3千천條조 , 몸 3千천條조, 經경驗험 3千천條조를 基기本본 豐풍饒요目목錄록 로 整정理이한다. 自자身신에게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을 目목錄록 으로 整정理이해서 느끼어보고 周주邊 변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 이 瞬순間간 생각하는 것이 이 瞬순間간 의 《나》이다. ‘나는 못났다.’라고 이 瞬순間간 생각하면 나는 못난이이다. 豐풍饒요 를 생각하면 나는 豐풍饒요다. 豐풍饒요 생각의 回회數수가 많아지면 어떤 現현 象상이 일어나겠는가? 回회數수에 比비例례해서 豐풍饒요人 인品품이 된다.
  • 原원理이가 大대家가를 낳는다고 했다. 相상談담의 大대家가 가 되려면 相상談담의 原원理이 들을 잡아야 한다. 幸행福복의 大대家가 가 되려면 幸행福복의 原원理이 를 잡아야 한다.
  • 只지今금, 여기, 바로 幸행福복 을 누리려면 [이미 넘치는 所소有유, 넘치는 幸행 福복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깨달음은 知지足족 , 感감謝사, 肯긍定정 , 豐풍饒요에 눈뜸이다. 知지足족 瞑명想상, 感감謝사 瞑명想상, 肯긍定정瞑명想상, 豐풍饒요瞑명想상은 같은 뜻의 다른 表표現현들이다.
  • 名명 相상談담家가가 되려면 只지今금 여기, 스스로 幸행福복 으로 넘쳐야 한다. 只지今금 여기, 바로 自자身신을 돌아보라. 幸행福복 이 넘치고 있는가? 幸행福복이 넘치고 있지 않다면 幸행 福복에 넘치지 않도록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요, 幸행福복하다면 幸행福복 하도록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 가만히 살펴보라! 餘여地지없이 그러함을 認인識식 할 것이다. 좋아하는 半반 컵의 사이다를 놓고 ‘半반 컵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면 氣 기分분이 좋지 않고, ‘半반 컵이나 있다.’라고 생각하면 氣기分분이 좋다.
  • 一일切절唯유心심造 조라는 華화嚴엄經경의 말씀이 있다. 모든 經경驗험은 생각이 決결定정한다는 뜻이다. 只지今금 여기에서 바로 幸행福복 을 經경驗험하려면 幸행福복 하도록 생각하면 된다.
  • 사람은 大대部부分분이 -+#의 原원 理이(마이너스 플러스 쌍(雙쌍)플러스의 原원理이: 幸행 不불幸행三삼段단 階계原원理이)로 世세上상을 經경驗험하는 법(法법)이다. 億억萬만 가지 아이템이 나부끼는 世세 上상은 우리에게 세 가지 類유型형으로 經경驗험된다. -, +, #이다. 곧 마이너스(不불正정 )로, 플러스(肯긍定정)로, 쌍(雙쌍 )플러스(超초越월)로 經경驗험 된다는 것이다. [否부定정的적으로 생각하기, 肯긍定정的적으로 생각하기, 超초越월的적으로 생각하기]에 相상 應응하는 經경驗험이다. 否부 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氣기分분 나쁨(불유쾌, 不불幸행)을 經경驗험 하고, 肯긍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氣 기分분 좋음(유쾌, 幸행福복)을 經경驗험하며, 超초越월 的적으로 생각하면 快쾌不불快쾌 價가 아닌 超초然연한 느낌을 經경驗험한다. 不불幸행을 원(願원)한다면 否부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되고, 幸행福복을 원(願원)한다면 肯긍 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되며, 解해脫 탈을 經경驗험하려면 兩양邊 변(兩양邊변: 眞진僞위 , 善선惡악, 美미醜추 )을 놓으면 된다. 그런데 眞진僞위, 善선惡악, 美미醜추는 사람의 意의識식 밖에 實실體체로서 存존在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主주觀관的적으로 附부與 여하는 것이다.
  • 不불幸행한 자(者자)는 없음에 注주 目목하고, 幸행福복한 자(字자 )는 있음에 注주目목한다. 《世세上상 에 떠도는 寸촌鐵철》
  • 只지今금 마음이 맑고 밝다면 現현在재 의 幸행福복이요, 過과去거 의 마음이 淨정化화되며, 未미來래 의 人인生생에 맑고 밝은 일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只지 今금 여기에서 바로 肯긍定정的적 생각을 하여 肯긍定정的적 느낌을 經 경驗험하라.
  • 누구나 이미 있고《旣기存존》, 이미 이룬 것《旣기成 성》으로 넘치는 成성就취, 넘치는 所소 有유 속에 있다. 旣기存존旣기 成성에 注주目목하지 않고 未미 成성(아직 이루지 못한 것, 未미來래에 이루어질 것)에 執집着착하는 것은, 人인生생에 對대한 無무知지요, 幸행福복에 對대한 抛포棄기다. 只지 今금 바로 窮궁乏핍에 注주 目목하는 意의識식의 習습 慣관에서 벗어나 豐풍饒요에 注주 目목하고, 豐풍饒요를 누리는 삶으로 轉전換환하라. 窮궁乏핍에의 注주目목은 現현在재의 不불幸행이요, 過과去거에 堆퇴積적해온 挫좌折절의 限한에 기름을 붓는 일이며, 未미來래의 窮궁乏핍 을 부르는 것이다. 아무튼 旣기存존旣기成 성(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에 눈뜨는 것이 豐풍饒요에 눈뜨고, 豐 풍饒요에 注주目목集집 中중하고, 豐풍饒요를 누리는 것이다.
  • 幸행福복公공式식: 幸행福복은 所소有유에 比비例례하고 欲욕求구에 反반比비例례한다. 幸행 福복量량을 增증進진 하려면 所소有유量량을 最최 大대化화하면 되고, 欲욕求구 量량을 最최少소化화 하면 된다. 所소有유 最최大대 畫화家가 만만한 일이 아닐 터, 欲욕求 구量량의 最최少소化화 가 賢현明명한 일이다. 欲욕求구의 最최少소 化화는 解해脫탈에 相상 應응한다.

    幸행福복公공式식:

    幸행福복 =  ━━━━━
    所소有유
    欲욕求구
  • 欲욕求구에는 必필要요의 欲욕求구로부터 執집着착의 欲욕求구까지 無무水수 段단階계가 있다. 欲욕求구 水수位위를 1~100段단階계로 나누어본다면 30段단階계까지는 모두의 幸행福복 을 위해서 꼭 必필要요한 善선한 欲욕 求구다. 30段단階계 以이 上상으로 올라가는 欲욕求구는 漸점漸점 利 이己기的적이고 執집着착 的적인 欲욕求구로서 惡악 한 欲욕求구이다. 80段단階계 以이上상의 欲욕求구 는 不불必필要요한 執집 着착的적 欲욕求구 이요, 自자身신을 망치고 이웃을 짓밟는 欲욕求 구이다.

2. 只지今금여기 바로 解해脫탈 을 누리고 있는가? 《卽즉脫탈》

解해脫탈을 누리려면 解해脫탈의 槪개念념을 理이解해하고 그것을 삶으로 體체驗험해야 할 것입니다. 解해脫탈이 무엇이냐를 論논함에는 原원 始시佛불敎교의 觀관 點점, 大대乘승佛불 敎교의 觀관點점, 나아가 各각 宗종派파들의 觀관點점 에 依의해 달리 定정義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은 當당然연합니다. 龍용陀타의 觀관點점은 禪선佛불敎 교에 바탕을 둔 觀관點점으로서, [걸림 없는 自자 由유感감]을 解해脫탈 이라 하고, 解해脫탈이란 解해脫탈 感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解해脫탈을 누리고 있느냐는 質질問문을 받는다면, 걸림 없는 自자由유感감, 걸림 없는 解해 脫탈感감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가를 살펴 答답하시면 됩니다. 人인生생에서 걸림없는 自자由유가 얼마나 重중要요한 것인지 認인識식하고 계십니까? 나아가 鎭진靜정 걸림 없는 自자由유 를 살고 싶은 마음이 있으십니까? 이 質질問문에 對대해서 걸림 없는 自자 由유에 別별 關관心심 이 없다는 答답이 나온다면 그런 사람은 佛불敎교式 식으로 無무緣연衆중生생 (因인緣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只지今 금 여기 幸행福복解해脫탈 보다는 어떤 欲욕求구不불滿만 으로 알게 모르게 憂우鬱울의 늪에 빠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勿물論논 理이解해 가 되는 일입니다. 願원하는 것을 成성就취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루어 가되 只지今금 幸행福 복解해脫탈하면서 해가면 좋다는 것이지요. 願원 하는 것을 잘 이루기 위해서라도 只지今금餘여機기, 바로 幸행福복해야한다는 自자覺각이 삶의 態태度도로 서 있는가 보세요. 자, 거듭 묻습니다. 문득문득 自자身신을 돌아볼 때 걸림 없는 탁 트인 自자 由유로운 느낌으로 살고 계십니까?

[不불幸행이니, 幸행福복이니, 解해脫탈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라면 幸행不불 幸행三삼段단階계 法법則칙에 깊게 머물러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人인 生생이란 對대象상(色색 聲성香향味미觸촉 法법)과 마주치는 過과程정입니다. 그 對대 象상을 [否부定정的적 으로 생각할 수 있고, 肯긍定정的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으며, 肯긍 否부定정을 넘어선 超초越월 的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깊게 注주目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三삼段단 階계가 幸행不불幸행을 論논議 의하는 據거點점이기 때문입니다. 幸행 福복을 論논議의하려면 有유爲위法법의 幸행福 복과 無무爲위法법(頓돈 法법)의 幸행福복을 區구 別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一일般반的적 으로 幸행福복이라 할 때는 有유爲 위法법의 幸행福복을 말하고, 解 해脫탈이라 할 때는 無무爲위法 법(頓돈法법)의 幸행福복 을 말합니다. 解해脫탈을 누리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無무爲위法법의 幸행福 복을 經경驗험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禪선佛불敎교에서는 無무爲 위法법보다는 頓돈法법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無무爲위라는 말은 道도敎교 에서 맨 먼저 썼을 것이고, 頓돈法법이라는 말은 禪선 佛불敎교에서 最최初초 로 썼을 것입니다. 어찌 됐든 無무爲위法법과 頓 돈法법은 表표現현만 다를 뿐 뜻은 같습니다. 禪선佛불 敎교를 代대表표하는 巨거 匠장이신 六육祖조惠혜 能능 大대師사께서는 禪선 佛불敎교의 걸림 없는 境경地지 를 깨달으시고 나서 [唯유傳전頓돈法법 ]이라는 旗기幟치를 내 걸으셨지요. 오직 頓돈 法법만을 傳전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인지, 나는 頓돈法법이라는 말을 훨씬 좋아합니다.

槪개念념 整정理이가 길어졌군요, 斟짐酌작하셨겠지만 穩온全전한 幸행福복을 누리려면 [이미 넘치는 所소有유, 넘치는 幸행福복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하듯이, 穩온全전한 解해脫탈 을 누리려면 이미 解해脫탈 속에 있다는 理이致 치, 곧, [頓돈法법(無무爲위法 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共공同동體체 에서는 準준備비된 者자라면 5分분 程정度도의 時시間간 에 頓돈法법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只지 今금 바로 이미 解해脫탈 속에 있다는 理이 致치(事사實실)를 깨달아버립시다. 頓돈法법이란 幸행不불幸행三삼段단 階계法법則칙 中중 第제 3段단階계 깨달음의 端단緖서가 되는 [超초越월 的적인 생각體체系계]를 말합니다. 이 瞬순 間간 여러분이 準준備비된 者자 라면 5分분 안에 解해脫탈을 經경 驗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幸행福복
有유爲위法법의幸행 福복 ─ 幸행福복
無무爲위法법의幸행 福복 ─ 解해脫탈

煩번惱뇌構구造조論 논에서 理이解해하시겠지만, 世세上 상 사람들 全전般반이 意의識 식이 들자마자 무언가를 槪개念념化화합니다. 나, 너, 그이, 그女녀, 그것, 눈, 귀, 팔, 다리, 볼펜, 冊책, 沙사 果과, 배, 善선, 惡악, 美미 , 醜추 等등等등. 天천下하는 緣 연起기의 世세上상인데, 열린 緣 연起기世세上상을 등지고 닫힌 實 실體체의 世세上상으로 墜추 落락합니다. 槪개念념은 執집 着착의 始시作작이자 執집 着착 自자體체입니다. 《나》라 規규定정 하면서 《나》에 執집着착하고, 《너》라 規규定 정하면서 《너》에 執집着착하는 心심理이現 현象상을 當당然연하게 여기면서 《나》의 業업, 《너》의 業업 을 키워갑니다. 善선이라 規규定정하면서, 그 善선이라 하는 것에 執집着착하고, 惡악 이라 規규定정하면서, 그 惡악이라 하는 것에 執집着착합니다. 美미라 規규 定정하면서, 醜추라 規규定정하면서, 眞진이라 規규定정하면서, 僞위라 規규 定정하면서, 大대라, 小소라, 東동 이라, 西서라, 天천使사라, 惡악 魔마라, 하늘이라, 바다라, 金금이라, 똥이라 規규 定정하면서 그것들에 執집着착합니다. 이 規 규定정, 이 執집着착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도 當당然연하게 여기며 걸려듭니다. 及급 其기也야는 地지獄옥과 戰전爭쟁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槪개念념 化화는 生생活활의 便편 宜의上상 絶절對대로 必필要요합니다. 그러므로 槪개念념 化화는 하되 執집着착에 떨어지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不불思사善선不불思 사惡악 正정與여麽마 時시 那나個개是시 明명上상佐좌 本본來 래面면目목《善선도 惡악 도 생각하지 말아보십시오. 그때 스님의 참모습은 무엇입니까?》 惠혜能능 禪 선師사께서 깨달으신 後후 師사兄 형인 惠혜明명 스님께 던지신 問문道도입니다. 스승의 衣의鉢발 이 더벅머리 盧노行행者자에게 傳전 授수 된 것을 알고 慧혜命명스님은 그 衣의 鉢발을 빼앗고자 몇十십 里리를 뒤쫓아 노행자를 덮쳤습니다. 그런 狀상況황에서 노행자(혜능선사)의 法법의 카리스마에 壓압倒도된 혜명 스님은 “저에게 重중要요 한 것은 醫의發발이 아니라 法법(眞진 理이)이옵니다. 法법을 說설해주십시오!”라고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그때 盧노行행者자는 혜명 스님에게 위의 話화 頭두를 던집니다. 그 質질問문, 그 問문道도, 그 話화頭두가 던져지자 慧혜命명은 5分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金금剛강經경에 《A는 A가 아니고 便편宜의上상의 이름이 A일 뿐이다》라는 文문章장이 20回회 以이 上상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분 中중 準준備비된 분은 只지 今금쯤 깨달음과 解해脫탈의 微미 笑소를 짓고 계실 것입니다. 5分분 思사索 색(思사索색: 思사惟유 , 생각)이면 解해決결될 일을 10年년, 20年년 參참禪선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 文문 化화的적으로까지 굳혀져 있는 뭇 靈영性성 村촌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똥은 사람에게는 더러움의 對대象상이지만 개에게는 군침이 도는 밥입니다. 사람과 個개는 제쳐두고 똥 自자體체는 무엇입니까? 神신聖성한 something 아닌가요? 元원曉효께서 唐당나라 留유 學학길에서 骸해骨골물을 마시고는 그 길로 그냥 歸귀鄕향해버린 것은 바로 그 something을 點점頭두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只지今금 바로 兩양邊변을 놓아보십시오. 兩양邊변이 놓일 때 바로 걸림 없는 自자由유 感감이 느껴질 것입니다. 모든 存존在재를 是시非비 넘어선 something으로 觀관照조 하면서 解해脫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未미盡 진하신 분은 龍용陀타關관을 노크하십시오.

3. 人인生생의 目목的적은 무엇일까?

諒양解해를 求구합니다. 暫잠 時시라도 思사索색의 時시 間간을 갖도록 ( )의 內내容용을 脚각 註주로 整정理이했습니다. 問문 道도六육章장2)은 同동事사攝섭 修수 鍊련 劈벽頭두에 所소 重중히 다루는 主주題제입니다.

問문道도六육章장

  1. 世세上상에서 第제一일 所소重중한 것은 (  )3)이다.
  2. 삶을 決결定정하는 核핵心심 要요因인은 (  )4)이다.
  3. 人인生생의 目목的적은 (  )5)이다.
  4. 幸행福복이란 (  )6)이다.
  5. 幸행福복의 主주體체는 (  )7)이다.
  6. 人인生생의 窮궁極극의 目목的적은 (  )8)이다.
  •   ✴ 삶을 決결定정하는 것이 價가値 치觀관(價가値치觀관 , 信신念념, 思사考고 方방式식, 생각)이라면 目목的 적價가値치觀관 定정 立립이 第제一일 重중 要요하다.
  •   ✴ [좋은 느낌], 곧 幸행福복이 人인 生생과 歷역史사와 모든 文문 化화 文문明명의 目목 的적이다.
  •   ✴ 느낌에 눈뜨지 못한다면 삶은 SHOULD, MUST에 묶이게 된다. 나는 同동事사 攝섭이라는 修수鍊련프로그램으로부터 많은 恩 은惠혜를 입었다. 입은 恩은惠혜中중 最최 高고의 恩은惠혜는 느낌에 눈뜬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느낌을 모르고 살던 半반平평生생은 SHOULD와 MUST에 묶인 索 삭莫막한 삶이었다.
  •   ✴ 人인生생의 窮궁極극 의 目목的적은 우리 모두의 幸행福 복이다. 곧 無무限한 宇우宙 주에 있는 有유形형無무形 형, 有유情정無무情정 모든 存존在재의 幸행福복 解해脫탈과 맑고 밝은 相상生생 氣기運운이다. 金금剛강 經경 正정宗종分분 에서 이르는 所소有유一일切체 衆중生생之지類류 若약卵란生생 若약胎태生생 若약濕 습生생 若약化화生생 若약有 유色색 若약無무色색 若약有 유想상 若약無무想상 若약非 비有유想상非비無무 想상 我아皆개令영 入입無무餘여涅열 槃반 而이滅멸度도 之지《宇우宙주에 存존 在재하는 모든 衆중生생들, 곧 알로 태어난 것, 胎태로 태어난 것, 濕습으로 태어난 것, 化화로 태어난 것, 色색깔이 있는 것, 色색깔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九구 類류衆중生생)을 두루 다 濟제 度도하여 니르바나에 들게 하리라 하고 서원하라.》라는 至지嚴엄 한 말씀을 想상起기해보는 것도 좋다.
  •   2) 問문道도라는 말은 眞진 理이를 묻기이다. 唐당宋송八팔大대 家가 中중 한 分분인 韓한愈유께서 스승이 弟제 者자에게 履이行행해야 할 세 가지 所소任임 이 있는데, 問문道도, 傳전法법 , 解해惑혹이라 하셨다.
  •   3) 삶
  •   4) 가치관, 신념체계, 생각체계
  •   5) 幸행福복
  •   6) 좋은 느낌, 좋은 氣기分분, GOOD FEELING
  •   7) 우리 > 나
  •   8) 우리 모두의 幸행福복, 無무 限한 宇우宙주에 있는 有유形형 無무形형 有유情정 無무情정 모든 存존在재 들의 幸행福복解해脫탈 과 맑고 밝은 相상生생 氣기運운

4. 마음이란 어떻게 생겼을까?

相상談담家가라면 마음에 對대한 理이解해 體체系계가 어떤 式식으로든 定정立립된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平평 生생 마음을 主주題제로 삼고 마음에 對대해서 理이解해하고 다루고 나누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結결果과 [마음 3拍박子자]라는 最최終종的 적인 마음學학 整정理이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相상談담家가나 마음工공 夫부人인이라면 이 마음 3拍박子자 가 마음 旅여行행의 羅나針침 盤반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마음 3拍박子자

《1》마음은 (A)9) 과 (B)10) 으로 構구 成성되어 있다.

《2》A 는 目목的적 機기能능 이요, B 는 手수段단 機기能능 이다.

《3》故고로, 느낌 좋도록 생각해야 한다.

가 나 B 머리마음 A 가슴마음 B 겉마음 A 속마음

마음은 [느낌과 생각], [생각과 느낌]이 全전部부라고 안다는 것이 마음工공 夫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느낌은 가슴 마음이자 속마음이요, 생각은 머리 마음이자 겉마음입니다. 마음공부인(마음工공夫부人인)이나 相상 談담家가라면 위의 圖도式식 이 보여주는 마음에 대(對대)한 理이解해를 基 기本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幸행福복 解해脫탈이라는 느낌을 위해 생각 잘하기가 얼마나 重중 要요한가를 認인識식함으로써 시들하게 나동그라져 있던 知지性성軸축은 革혁 命명的적으로 活활力력 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음, 여러 寸촌鐵철的적인 말씀들을 생각해 보면 《생각》이 人인生생의 全전部부 는 아니더라도 삶의 구석구석을 생각이 支지配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낮은 水수準준의 생각은 地지獄 옥과 싸움을 부르지만, 높은 水수準준의 생각은 幸행福복이라는 느낌을 經경驗험하게 하고, 最최高고 水수準준의 생각은 解해脫탈 과 大대慈자大대悲비 라는 느낌을 일으킨다.

  ✴ 이미 넘치는 所소有유 (成성就 취)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넘치는 幸행福복을 經경驗험한다.

  ✴ 많은 靈영性성村촌에서는 생각하는 것을 마음工공夫부에 있어서 禁금忌기 事사項항으로 取취扱급한다. 莫막存존知지解해, 不 불立립文문字자를 家가 風풍化화까지 한다. 질(質질)이 얕은 생각을 止지揚양해야 하는 것은 當당然연히 옳지만, 생각 自자體체 를 禁금하는 惡악弊폐는 지극히(至지 極극히) 잘못된 것이다.

  ✴ 八팔萬만大대藏장 經경이 全전部부 생각 體체 系계요, 바이블이 모두 생각 體체系계요, 四 사書서三삼經경이 생각 體 체系계이며, 天천下하의 산더미(山산더미) 같은 人인文문學학 , 自자然연科과學학 書서籍적이 모두 생각 體체系계 이다. 프로이트로부터 로저스까지의 모든 相상談담 書서籍적들이 생각 體체系계요, 音음樂악, 美미術술, 體체育육 等등의 理이論 논 書서籍적들이 모두 생각體체 系계이다. 釋석迦가牟무 尼니의 緣연起기法법 이 생각(思사惟유, 思사索색 )을 통해 얻어낸 생각 體체系계요, 四사聖 성諦제, 12緣연起기, 8正정道도가 모두 생각이요, 無무常상 , 苦고, 無무我아 等등 의 解해脫탈 方방便편 이 모두 생각 體체系계이다. 이 모든 생각 體체 系계들이 다 幸행福복하기 위한 手수 段단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 생각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다. 意의識식 의 窮궁極극의 境경地지 에서는 느낌과 생각을 다 끊어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다. 이것은 하겠다, 저것은 하지 않겠다 式식의 各각種종 行행動동誘 유發발의 當당爲위도 다 생각이다. 一일言언 以이蔽폐之지하여 모든 感감 覺각認인知지 過과 程정에는 그에 相상應응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法 법, 느낌이 끝내 收수斂염處처이니 느낌 좋도록 感감覺각하고 認인知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다.

  ✴ 위 幸행福복론에서도 살펴보았듯이 幸행 福복을 決결定정하는 것이 結결 局국 생각임을 알 수 있다. 否부定정的 적으로 생각하면 不불幸행해지고 肯긍 定정的적으로 생각하면 幸행福복 해진다. [半반 컵 사이다의 原원理이]는 人인類류 救구援원論논의 하나이다. 半반 컵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半반 컵이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差차 異이에서 人인類류 救구 援원論논을 이야기하면 冷랭笑소 的적으로 들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事사實실이다. 아들이 數수學학은 잘하는데 英영語어는 잘못할 때 《내 아들은 數수學학은 잘하는데 英영語어 는 잘못한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 아들은 英영語어는 좀 못하는 便편이지만 數수 學학은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의 差차異이에서 어떤 빛을 보지 못한다면 한 遺유 憾감이다.

5. 煩번惱뇌構구造조 論논

相상談담家가는 最최優 우先선으로 스스로의 마음이 幸행福복해야 한다. 마음의 幸행福복을 가로막는 障장礙애 要요因인은 이것저것 많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마음에 쌓아온 煩번惱뇌일 것이다. 곧 貪탐 瞋진癡치 三삼毒독 이다. 이 煩번惱뇌에 對대해서 잘 理이 解해하고 잘 淨정化화하는 일이 要요 請청된다. 먼저 煩번惱뇌가 어떻게 發 발生생되고 熟숙成성되고 굳어지는가를 理이解해해보고 다음은 煩번惱뇌의 淨정化화를 具구體체的 적으로 어떻게 해낼 것인가를 理이解해해보겠다.

槪개念념以이前전 ,無무心심:옴나
太태虛허太태初초 , 빅뱅以이前전
3 大대惡악思사考 고
實실體체思사考고
價가値치思사考고
不불滿만思사考고
欲욕求구 (所소有 유欲욕, 排배斥척欲욕 )
挫좌折절
成성就취 - 緊긴張 장 - 欲욕求구强강化 화
忿분怒노
癡치
貪탐
瞋진
三삼毒독

《1》 煩번惱뇌構구造조 人인生생이 幸행福복論 논일 터, 幸행福복론 次차元 원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修수心심을 하려면 마음속에서 煩번惱뇌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떤 構구造조 로 存존在재하는가를 아는 것이 좋다. 여기에 紹소 介개하는 煩번惱뇌構구 造조는 佛불敎교에서 말하는 12演연技기의 다른 판이다. 十십二이緣연起기는 衆중生생 (사람)이 어떤 經경路로를 밟으면서 苦고痛통스러운 三삼世세에 輪윤廻회하는가를 열 두 段단階계로 나누어 說설明명하고 있다. 그 첫 始시作작 이 無무明명이다. 無무名명 이란 밝지 않음, 곧 어리석음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무엇인가? 事사實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이요, 理이 致치를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卽즉 人인 生생의 主주體체인 나(自자 我아)라는 것이나, 나의 對대象상인 色색 聲성香향味미觸촉 法법 等등의 모든 것들이 緣연起기的적 存존 在재로서 無무我아요, 非비 我아요, 空공이요, 非비實실 體체요, 無무念념無무 相상無무住주요, 無무 有유主주客객이요, 無무 有유定정法법이며, 中중 道도인데 그것들이 實실體체로서 存존 在재한다고 여기는 것이 原원初초的 적인 어리석음, 곧 無무明명이다. 馬마 鳴명 大대使사는 大대乘승起 기信신論논에서 無무明명 을 端단的적으로 定정義의 하여 主주客객意의識식 (主주客객意의識식, 나 或혹은 너라는 생각)이라 하였다. 《番번腦뇌構구 造조》는 12演연技기의 다른 판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整정理이 한 理이由유는 煩번惱뇌 를 明명瞭료簡간單단 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煩번惱뇌構구造조 는 簡간單단히 《있다-좋다-싶다-썅》으로 생각하면 된다. 있지도 않은 것을 무엇이라 이름을 붙이면서 《있다》하고, 나아가 그냥 있는 것들을 《좋다》 或혹은 《나쁘다》 하니 [어리석음(癡치)]이요, 없는 그것을 갖고 싶어 하니 欲욕求구(貪 탐)요, 欲욕求구韓한 대로 잘 안 되니 ‘쌰~ㅇ’하는 忿분怒노(瞋진)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人 인間간 一일般반의 貪탐 瞋진癡치 三삼毒독 이다.

《2》 [槪개念념以이前전] 番번腦뇌構구造조 論 논議의의 出출發발點점 은 槪개念념以이前전 이다. 槪개念념이란 國국語어辭 사典전에 나오는 모든 單단語어이다. 사람 一일般반 이 世세上상을 認인識식 하는 方방法법의 基기礎초 가 槪개念념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槪개 念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을 아버지, 어머니, 兄형, 或혹은 동생이라고 개념화함으로써 삶의 便 편宜의度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 槪개 念념化화가 苦고痛통과 戰전爭쟁을 불러온다. 槪개念념 以이前전이란 무엇인가? 어떤 存존在재 에 槪개念념을 附부與여하기 以 이前전의 狀상態태이다. 그것은 太 태虛허요, 太태初초요, 이브가 善 선惡악果과를 따먹기 以이前 전의 世세上상이요, 無무心심 이요, 物물自자體체요, 無무 念념無무相상無무 住주요, 無무有유定정 法법이요, 自자性성이요, 如여 如여요, 如여來래요, 實실 相상이요, 無무爲위요, 無무位위이다. 사람의 意의識식은 鉛연筆필이라는 槪개念념을 選선擇택함으로써 無무爲위法 법은 勿물論논이고 다른 모든 屬속 性성을 죽이고, ‘鉛연筆필’이라는 한 槪개 念념에 固고着착됨으로써 硬경 化화 過과程정에 들어선다. 곧 《分 분別별-是시非비-執집 着착》이다. 分분別별是시非비執집 着착의 結결果과, 人인間간은 苦 고痛통과 戰전爭쟁의 奈落락으로 떨어진다. 槪개念념化화 가 苦고痛통의 元원祖조 라는 것을 首수肯긍하는 것은 큰 깨달음의 하나이다. 佛불 敎교式식으로 말하자면 苦고聖성 諦제와 集집聖성諦제의 깨달음이다. 이에 地지獄옥인 槪개念념 으로부터 벗어나 槪개念념以이前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當당爲위感감을 느끼게 된다. 槪개 念념以이前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깨달음이요, 解 해脫탈이요, 救구援원이다. ‘鉛 연筆필’이라는 槪개念념에서 ‘鉛 연筆필 移이轉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救구援원이다. 이 論논旨지가 首수肯긍된다면 이것은 解해脫탈과 救구援원의 瑞서光광이 비쳐온다는 것을 意의味미 한다. 그러면 槪개念념以이前전 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槪개念념以이前전 을 어떻게 把파持지해야 할까? 곧 ‘鉛연 筆필’이라는 槪개念념, 그 以이 前전의 그 存존在재 自자 體체는 무엇일까? 答답은 簡간單단하다. ‘鉛연筆필’이 아니라, ‘鉛연筆필’이라 이르기 以이前전 의‘그것 自자體체’이다. 結결論논 부터 말한다면 그 어떤 것도 《그것 自자體체》(自자 體체, 實실相상: Ding an sich)는 그 어떤 式식으로도 規규定정될 수 없는 無무有유定정法법이어서 無 무爲위의 風풍光광으로 드러나 사람의 解해脫탈을 결정지어준다. 凡범夫부는 《鉛연筆필》이라 槪개念념化화하면서 그 《鉛연 筆필》이 《鉛연筆필 自자 體체》라고 믿는다. 그런 사람은, 西서洋양哲 철學학者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素소 朴박實실在재論논 者자이다. 獨독逸일 留유學학에서 12年년間간 칸트의 著저書서, 純순粹수理 이性성批비判판을 硏연 究구하여 博박士사가 되신 筆필 者자의 哲철學학 스승의 말씀이 平 평生생 記기憶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素소朴박實실在재論 논 圈권에서 사는 사람은 벌레와 큰 差차異이가 없다.”하신 말씀이다. 씹어볼수록 一일理이 있는 말씀임을 數수없이 느껴온 바이다. 一일旦단 槪개念념 以이前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救구援원이요, 解해脫탈 이라는 것을 거듭 귀띔해 둔다. 槪개念념以이前 전을, 解해脫탈을, 니르바나를 經경驗험해야 하지 않겠는가! 《3》 [實실體체思사考고 ]

《槪개念념以이前전》에서 《槪개念념》으로의 첫 墜추落락을 實실體체思사考고라 한다. 곧 이름을 붙이는 心심理이過과程정을 말한다. 예: 나, 너, 그이, 그女녀, 冊책床상, 冊책 ), 椅의子자, 사람, 動동物물 , 山산, 하늘, 꽃, 개나리꽃, 나무, 자작나무, 哲철學학, 科과學학 , 宗종敎교, 하나님, 等등等등 等등... 國국語어辭사 典전의 모든 單단語어, 모든 文문 章장이 實실體체思사 考고이다. 왜 이름을 붙일까? 그 어떤 것들이 사람의 삶에 어떤 意의味미, 어떤 價가 値치가 있으므로 사람끼리 그것들에 對대해 원활한 意의思사疏소 通통을 위해 便편宜의上상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목이 마른 아버지가 딸에게 “얘야, 물 한 컵 떠오겠니?” 한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물》 , 《컵》이라고 하는 槪개念념이 約약束속되어 있지 않다면 딸이 아버지에게 물을 待대令령 하는 行행爲위는 쉽게 期기待대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槪개念념 自자 體체가 크게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現현實실的 적으로 必필要요한 便편宜의 物물이다. 便편宜의를 위해 만들어진 槪 개念념이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金금剛강經경式식 의 表표現현으로는 《컵 卽즉非비 컵 是시名명컵: 컵은 컵이 아니고, 便편宜의上상 일러 컵이라 함》 이다. 便편 宜의上상 붙여진 이름이니 불러 쓰고 다시 놓으면 된다. 그런데 놓지 못하고 《分분別별-是시非비-執 집着착》을 하니 苦고痛통과 戰 전爭쟁이 따를 수밖에.

《4》 [價가値치思사考고]

그 單단純순한 듯한 《槪개念념》은 同동時시에 價가値치性 성을 前전提제한다. 앞에 놓인 한 事사 物물을 ‘鉛연筆필’이라고 實실 體체로 規규定정할 때는 이미 어떤 意의 味미, 어떤 價가値치가 있으므로 그렇게 槪개念념化화를, 곧 《實실 體체視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實실體체視시(實실體 체思사考고)와 價가値치 詩시(價가値치思사 考고)는 銅동錢전의 兩양 面면과 같이 서로서로 同동時시的적 으로 前전提제된다. 어떤 事사物물 에 價가値치附부與여를 하는 程정度도만큼 그 事사物물에 對대한 引인力력 또는 斥척 力력이 發발生생한다. 肯긍 定정 價가値치는 끌어오려 하고 不불正정 價가値치는 排배斥척하려고 한다. 그 《人인力력 -斥척力력》의 程정度도 만큼 緊긴張장이요, 스트레스요, 苦고痛통 이요, 戰전爭쟁이다. 同동事사 攝섭 工공夫부村촌 에서는 實실體체思사考고 나 價가値치思사考고 體체系계를 바로잡기 위해 非비我아 (無무我아) 冥명想상 을 勸권奬장한다.

《5》 [欲욕求구]

欲욕求구란 一일旦단 Needs를 前전提제하기는 하나 그 Needs의 周주邊변 에 形형成성되는 Desire가 欲욕求구의 本본質질 이다. 나아가 欲욕求구는 未미成성 熟숙한 審심理이(貪탐 瞋진癡치) 全전體체를 아우르는 槪개念념이다. 곧, 欲욕求구 의 量양이 많을수록 幸행福복量량이 준다는 말은 未미 成성熟숙이 甚심할수록 不불 幸행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欲욕求구 最 최少소化화 志지向향 이란 非비但단 ‘欲욕求구 ’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모든 未미成성熟숙心 심理이(염체)의 最최少소化화 를 志지向향함이다. 곧 欲욕求구 는 別별途도의 圖도式식으로 드러내는 煩번惱뇌 構구造조와 같은 槪개念념 이다. 煩번惱뇌構구造조 를 略약式식으로 整정理이 한다면, [ 있다 ? 좋다 ? 싶다 - 쌍 ? 不불滿만事사 故고 ]이다.

欲욕求구의 特특殊수性 성: 複복雜잡한 煩번腦뇌 構구造조 上상의 欲욕 求구란 特특殊수性성을 지닌다. 天천下하의 平평和화를 깨뜨리는 가장 直직接접的적인 要요 因인은 欲욕求구(執집 着착)心심理이이다. 卽즉 이것 하나만 解해決결해버리면 平평和화 99%를 解해決결해버리는 것이다. 高고爐로, 未미成성 熟숙의 代대表표槪개 念념으로 欲욕求구를 擧거論논하는 것이다. 價가値치 思사考고에 이어 欲욕求구 라는 《싶음》의 마음이 일어난다. 欲욕求구의 對대 象상은 많고 많다. 衣의食식住주 , 健건康강, 돈, 權권力력 , 名명譽예, 사랑, 認인定정 , 知지識식, 工공夫부, 體체能능, 藝 예能능, 學학問문, 事사 業업, 多다樣양한 技기 術술, 旅여行행, 購구買매, 等등等등. 가히 無무數수한 Needs이다. 人인間간 에게 欲욕求구는 不불可가 避피하고 當당然연하다. 그러나 欲욕 求구에는 自자然연히 緊긴 張장 에너지가 서린다. 그 緊긴張장 에너지의 强강度도가 어느 線선 以이上상을 넘어서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欲욕 求구와 執집着착은 같은 質질 의 心심理이 現현象상 이지만 欲욕求구에 스트레스가 서린 것을 執집着 착이라 한다. 卽즉 스트레스 程정度도만큼 執집着착이다. 여기에서 欲욕求구란 最최小소限 한 以이上상의 執집着착 이 前전提제된 槪개念념이다. [執집着착으로부터 解해脫탈하기 위해서 《죽음冥명想상》을 한다.]

《6》 [忿분怒노]

欲욕求구(싶음)는 實실現현되면 좋을 터이지만 願원하는 대로 잘 안 된다. 100名명이 다툰다. 누구나 1等등이고 싶지만 99名명은 떨어진다. 속이 傷상한다(忿분怒노). 모든 欲욕 求구에는 거의 忿분怒노가 따른다. 設설或혹 欲욕求구가 實실現현된다고 해도 그 實실現현 過과程정이 그지없는 緊긴張장과 葛갈藤등이요, 實실現현의 기쁨은 暫잠時시일 뿐, 또 곧장 다른 欲욕求구 의 마당에 들어섬으로써 卽즉時시 緊긴張장 -葛갈藤등-忿분怒노가 일어난다. 忿분怒노는 過과去거의 火화가 淨정化화되지 않은 채 抑억 壓압된 것이 있고 現현在재 일어나고 있는 것도 있고, 밖으로 表표出출되는 忿분怒노도 있으며, 밖으로 表표現현하는 忿분怒노도 있다. 忿분怒노에 相상應응하는 한두 가지 信신念념體체系계를 지닌 것도 좋다. ‘感감情정이 있을 때 表표現현하지 않는다.’‘화가 일어날 狀상況황 이란 없다. 오직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行행動동할 것이냐가 있을 뿐이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忿분 怒노를 淨정化화하기 위해 《나知지 事사 冥명想상》을 한다.]

《7》 [不불滿만事사故고 (不불滿만思사考고: 不불知지足족思사考고 )]

無무數수히 反반復복되는 《欲욕求구→忿분怒노》 의 審심理이過과程정에서 必 필然연的적으로 派파生생 되는 信신念념體체系계 하나는 ‘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라는 《不불滿만思사考고 》이다. 이 不불滿만事사故고 는 幸행福복의 99%를 左좌右우하므로 幸행福복 論논에 있어서 깊게 注주目목해야 할 또 하나의 特특殊수 狀상況황이다. 사람이 不불幸행 한 瞬순間간에는 언제나 그 不불幸행 밑에 不불滿만思사考고 가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萬만一일 不불滿만 事사故고 하나만 完완全전 하게 剔척抉결해버린다면 不불幸행 은 99.99% 사라져버린다. 不불滿만事사故고는 다른 表표現현으로 不불知지足 족思사考고 (滿만足족을 알지 못하는 思사考고 )이다. 곧 不불滿만事사故고 를 滿만足족事사故고 《知지足족事사故고》로 轉전換환하기만 하면 幸행福복의 99.99%가 解해決결된다는 뜻이다. 幸행福복 의 99.99%를 決결定정하는 것이 不불滿만 事사故고 如여何하라는 點 점에서 不불滿만事사故고 는 特특殊수性성을 띤다. 그래서 幸행福복論논에서 知지 足족이라는 德덕目목은 大대 書서特특筆필하면서 注주目목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佛불敎교 의 重중大대 經경典전 인 遺유敎교經경이나 法법句구經경 等등에는 少소慾욕知지足 족이 힘주어 强강調조되고 있다. 知지 足족! 아무리 强강調조해도 넘치지 않는 德 덕目목이다. 簡간單단히 煩번 惱뇌構구造조를 整정 理이 說설明명했다. 圖도 表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煩번惱뇌構구 造조를 佛불敎교의 《貪탐 瞋진癡치 三삼毒독 》으로 整정理이한다면 實실體체思사考고, 價 가値치思사考고, 不불 滿만 事사故고는 思사考고를 잘못하는 것이니 癡치, 곧 어리석음이요, 欲욕 求구와 忿분怒노는 貪탐 과 瞋진일 터이다. 鎭진靜정 至지 高고한 幸행福복解해 脫탈을 願원하는 마음 孔공夫부 人인이라면 必필히 이 煩번惱뇌 構구造조에 對대한 깊은 洞통察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不불滿만 思사考고에서 벗어나 滿만足족 할 수 있는 心심理이 狀상態태 가 되기 위해서는 《支지族족(監감査사 )冥명想상》이 極극히 좋은 方방 便편이다.]

6. 마치는 말

幸행福복解해脫탈을 主 주題제로 하여

《1》 只지今금 여기, 바로 그 幸행福복 解해脫탈을 經경驗험 해야 한다는 것과 그 經경驗험을 하기 위해서는 相상應응하는 方방便편을 깨닫고, 方방便편을 慣관行행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2》 바로 只지今금 幸행福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미 넘치는 所소有유 속에 있으니 넘치는 幸행福 복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 窮궁乏핍에 注주 目목하는 否부定정的적 생각을 그치고, 豐풍饒요, 곧 이미 있는 《旣기存존 》과 이미 이룬 《旣기成성》에 注주目목하는 肯긍定정的적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3》 解해脫탈을 누리기 위해서는 存존在재 論논 次차元원에서 緣연 起기요, 中중道도요, 頓돈 法법임을 깨닫고, 그 어떤 것도 걸릴 것이 없다는 것을 首수肯긍 함으로써 걸림 없는 解해脫탈을 經경驗험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4》 마음을 느낌과 생각으로 나누어 보고, 느낌이 人인生생에서 目목 的적技기能능이요 생각은 그 目목 的적을 위한 手수段단 機기 能능이니, [느낌 좋도록 생각 잘 하기]가 全전 人인 生생과 全전 歷역史사 를 貫관通통하는 普보遍편 的적 當당爲위임을 살펴보았습니다.

《5》 問문道도六육章장에서 살펴보았듯이 人인生생의 窮궁極극 的적 目목的적은 사람의 幸행福복解해脫탈은 勿물論논이요, 모든 存존在재, 곧, 모든 動동物물, 모든 植식物물, 모든 無무生생物물,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 形형體체가 있는 모든 것, 形형體체가 없는 모든 것들의 幸행福복 解해脫탈과 맑고 밝은 相상生생 氣기運운을 우리네 삶의 理이想상 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면 어떨까를 살펴보았습니다. 參참考고로 釋석 迦가牟무尼니의 觀관 點점 하나를 紹소介개합니다. [“낮은 次차元원 에서는 汚오辱욕樂낙의 즐거움이 있고, 漸점 漸점 높아지는 즐거움이 있나니, 初초禪선의 즐거움, 二이禪선 의 즐거움, 三삼禪선의 즐거움, 四사禪선 의 즐거움, 空공無무邊변處처 의 즐거움, 識식無무邊변處처 의 즐거움, 無무所소有유處처 의 즐거움, 非비想상非비非비想상 處처의 즐거움, 마지막으로는 모든 느낌과 생각이 사라져버리는 受수想상滅멸의 즐거움이 있느니라.”]

《6》 군더더기 말입니다만,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主주觀관的적 인 觀관點점이요 價가値치 觀관이니 그 말씀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서로 尊존重중하고 交교流류 함으로써 變변化화 發발展전 해 가는 것이 열린 歷역史사의 場장이리라 믿습니다.

感감謝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