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의 頓忘瞑想
65. 頓忘을 哲學的으로 整理한다면 空性相一如가 適格이다. 空性과 性性, 相性 과 空性相一如性이 哲學的으로 首肯이 되는가 보라. (菩提方便門思想)
66. 頓忘을 分明히 잡았는데 頓忘에 이어서 沒入을 하지 못하는 理由--硏鑽
- (1) 價値 優先 順位
- (2) 익어진 사이다 맛
- (3) 業障
67. 頓忘은 把持했으나 싱겁다는 感을 느낍니다. 이러한 境遇에 適當한 指導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指導者 某某님의 要請)
- (1) 싱거운 그것을 길들인다. 길드는 程度만큼 體驗은 隨伴된다.
- (2) 中毒된 사이다를 찾지 않으려 努力한다. (持戒)
- (3) 無意識의 微細煩惱를 剔抉하고자 努力한다.(斷食,呼吸,禪定等)
- (4) 意味 整理:一切의 依存이 사라진 狀態로 足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보너스이다.
68. 頓忘을 主題로 나누는 것이 頓忘을 돕는다.
69. 頓忘의 歷史
- (0) 63年 色卽是空 打破
- (1) 87年8月15日 泰安寺에서 覺醒〈옴〉 點頭
- (2) 10餘回의 强力 無限 體驗(大 2, 조기정 (=?交龜亭), 堆雪堂, 碧蓮禪院, 아봐타 1 ~ 3, 菩提庵 石窟, 카멜 드라이브, 엘에이 스타박스, 87 年 泰安寺 等)
- (3) 覺醒點頭를〈옴〉이라 이름 붙임
- (4) 周邊 修行者들에게 實驗
- (0) 間에 머물라.
- (5)〈옴나〉開發
- (0) 我空法空
- (6)〈頓忘〉으로 再定立
- (7) 空性相一如의 念佛禪과의 統合
- (8)〈頓忘〉理論의 發達
- (9) 無限 만트라
70.〈옴나〉와〈頓忘〉의 差異:
高級課程의 前半期에는〈옴〉만을 觀行하면 되던
時節이 있다가 옴과
구나를 아우르는〈옴나〉를 觀行하면 되는 時節로 이어졌다. 다음은, 300
萬年 동안 實體視로 익어진
人間의 에고, 곧〈實體思考〉를 剔抉하고,
[緣起, 空]이라는 正見(바른
價値觀) 을 定立觀行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洞察이 옴으로써 我空法空觀을 더하여
옴 -- 옴나 -- 頓忘
으로 變化發展하게 되었다.
옴 乃至 옴나는 頓忘三觀의 第 1
觀인 [그냥 있음]으로 表記하고, [我空法空]은
第 2 觀이며 여기에
現實(느낌,基礎受) 受容을 하나 더하여
頓忘三觀으로 定立하였다.
이따금 體驗上 그냥 있음〈그냥 깨어있음〉만으로 充分한데
我空法空 같은 것을 왜 더해야 하느냐는 質問을
받곤 하는데 그質問이 理解는 되나 千萬의 말씀인
것이다. 無意識 깊고 깊은 곳에〈나〉다〈너〉다 하는
實體思考가 宿便처럼 堆積되어 있는것이
衆生一般의 靈性 現實인데 그
宿便을 除去하지 않고[그냥 깨어
있는다]程度로 무언가 되고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釋尊과
龍樹의 指針 1 號
正見 1 號가 無我요
空이였음을 쉽게 看過해서는 안 될 것이다.
思惟(思索)가 必要한 자리이다.
71. 사람은 하는 것에 集中하느라 안하기를 잊어버린다.〈頓忘〉이란 안하기를 하는 것이다.
72. 自我가 사라지고 걸림 없이 깨어 있기.
73. 自我가 있든 없든 存在界는 그냥 그대로 이미 槪念以前이요 頓忘이다.
74. 人文學 書籍이 몇 卷이나 될까? 數千數萬數十萬이 넘을 것이다.그냥 10000 卷이라고 해보자. 最小限의 人文學이라 하면 萬 卷의 1/100 인 100 卷 程度이다. 最最小限의 人文學이라고 하면最小限의 人文學의 1/100 인 1 卷이다. 同事攝 一般過程의 삶의 指針은 바로 最最小限의 人文學일 것이다. 말씀이 複雜하니 그냥 最小限의 人文學이라고 하자.
75. 實體視하는가. 緣起視하는가는 衆生인가 부처인가를 말한다.
76. 검불: 修鍊生에게 修鍊을 妨害하는 검불이 있다면 豫想되는 검불은 무엇이겠는가? 頓忘을 잘 把持하지 못하는 理由,頓忘을 把持했는데도 재미나 意味가 없는 理由,頓忘에 이어서 沒入을 하지 못하는 理由?
- (00) 業障
- (00) 基礎脆弱 (60名中60等)
- (00) 發射臺脆弱 (修鍊費 1 億 원)
- (01) 中毒
- (02) 不傾聽
- (03) 自家流
- (04) 헌 負袋
- (05) 念體
- (06) 眞情性
- (07) 基礎信念
- (08) 人文學
- (09) 다이어트
- (10) 마스트 信賴 脆弱
- (11) 動機 脆弱
- (12) 몸 컨디션, 健康
77. 波羅蜜: 몸컨디션을 最適切히 堅持하고자 努力한다.
78. 꿈속에서도 默言하기 (默言 自體로 實相을 接한다)
79. 꿈 없는 잠과 같은 狀態가 아닌 確然한 現實이다.
80. 그것 (頓忘, 純粹意識, 妙覺, 自省은 只今 여기에 昭昭靈靈하게 存在하고 있다. 首肯(點頭) 되는가? 느껴지는가?
81. 긴 歲月 遂行해서 解脫이 온다고 錯覺하지 말라. 한 觀點 轉換으로 解脫은 따른다.
82. 老人 正體性: 나이 八, 九十이 되었다고 보자. 어떤 式으로 存在하는 것이 베스트일까? 亦是 頓忘일 것이다.
83. 누구나 이 狀態를 이미 體驗하고 있다. 오직 體驗하고 있음을 몰라서 遺憾일 뿐 이다. 여기에서 要請하는 것은 이미 그것을 體驗하고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84. 다음은 自身 의 心理 過程을 잘 調律하면서 사는 最高(?)로 成熟한 사람의 母型이 提示된다.
85. 頓忘이 把持는 안 되더라도 助波羅蜜이 익어지면 頓忘把持가 쉬워지기도 하고 把持된 頓忘이 더 一行될 수 있으니 助波羅蜜의 遂行도 必要하다.
86. 頓忘 -- 知足 -- 俱現이 各各 ( ) :( ) :( ) %로 잡혀지는가?
87. 頓忘 體驗 程度가 5 (아주좋음)이더라도, 頓忘의 價値 (意味) 優先順位 (價値觀)가 넘버 10 이라면?
88. 同事攝이 天下의 모든 이에게 傳達하고 싶은 (體驗시키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 것 같은가? 頓忘이다. 頓忘의 正體 (實體) 는 무엇일 것 같은가?
89. 두 個의 胎줄을 끊으라. 아트만 (참나) 과 브라만 (創造神)
90. Ding an sich, 物自體, 超越者.
91. 마음을 끌어가는 일거리, 하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라. (應無所住而生其心)
92. 마음이 무언가에 머무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人生이다. 머물되 執着의 痕跡이 없이 머물면 聖者요, 執着의 痕跡이 남으면 凡夫요 衆生이다.〈옴〉이나,〈구나〉나,〈옴나〉나, 頓忘等은 痕跡 없이 머무는 方便이다.
93. 맹물맛. 水平情緖. 是플러스가아니고 非마이너스. 樂受가 아니고 捨受中 그 極點의 覺受의 捨受가 頓忘이요 니르바나.
94. 머리통은 없다. 눈을 가슴에 붙이고 散策하라.
95. 瞑想散策 (意識 散策) 의 同一한 散策路를 그지없이 즐겨보는 作業이다. 同一한 經驗의 反復에 興味를 잃지 않는 學習이라야 意識은 쉴 수 있고 고요해질 수 있다.
96. 모든 것 (環境・몸・마음)에 注意를 보내지 않음에 不拘하고 確然한 現實로 體驗되는것, 그것을 붙들라. 아니, 붙들 必要 없이 이미 거기에 있는 그것을 느끼면 될뿐이다.
97. 몸이 안 좋아 藥房에 가서 藥을 샀는데 그 藥이 華陀가 쓴 藥材인가를 알고 服用하는 것이 重要하겠는가 아니면 一旦 먹고 낫는 것이 重要하겠는가? 龍陀 스님의 그것이 佛祖의 그것과 一致될까 안 될까에 神經을 쓰고있는 程度만큼 徒勞한 消耗戰 이다. '龍陀 프로그램에 왔으니 龍陀의 그것을 一旦 通過해보는 經驗 을 해본다' 가 全部이다. 그 結果 좋으면 取하고 아니면 버리면 된다. 龍陀關을 뚫어라.
98. 無限 次元에서는 宇宙도 刹那의 事件이다. 그 時間이 길다고 여기는 것인 人間的인 錯覺이다.
99. 뭇 衆生이 土臺 없이 산다. 그냥 있음에 눈뜨는 것. 그것이 삶의 土臺이다.
100. 배우는 것은 勿論 重要하다. 그러나 스스로 思惟하여 깨닫는 것은 더 重要하다. 〈法燈明 --自燈明〉
101. 사람은 每 瞬間 어떤 心理 過程 (마음 狀態) 에 있다.
102. 벡터놀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根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03. [보는 것]과 [보이는 것]사이의 에너지 差異를 느껴보라.
104. 볼거리가 上林 公園밖에 없는 咸陽에서는 上林만을 向한다. 萬一 上林보다 더 크고 더 훌륭한 德津 公園이 咸陽에 있다면 德津 公園을 向할 것이다. 마실것이 콜라 밖에 없는 곳에서는 해로운 줄 알면서도 콜라만을 찾고 콜라에 中毒되어 간다. 그런데 生水가 터져 나온다면 어떻겠는가?
105. 否定 境界를 卽한 瞬間:
- (1) 그 境界가 이미 지니고 있는 雙플러스와 플러스를 留念한다.
- (2) 그 否定境界의 領域은 肯定 領域 (플러스, 雙플러스) 에 비하면 極히 적다는 認識을 한다.
- (3) 그 否定도 정작은 모르며, 觀點에 따라 얼마든지 肯定性이 있는 法이다.
- (4) 否定이 確實하다면 理解와 사랑의 바탕 위에 베스트 點을 찾는다.
106. 빔 哲學: 實體와 空間 === 念體와 意識空間 ---- 빔 빔 빔의 노래
107. 非苦를 驚異 感으로 느끼지 못하고 當然視하는 匹夫들!
108. 빔 哲學: 實體와 空間 === 念體와 意識空間 ---- 빔 빔 빔의 노래
109. 사람의 不幸은 大體로 識主體 機能이 自身의 心理過程을 마음대로 (意志的으로, 意圖대로, 選擇的으로, 意識的으로) 調律하지 못하고 習慣的으로 (패턴的으로) 흘러감으로서 發生한다. 一定 水準의 幸福도 이 習慣的 次元에서 얻어질 수 있으나, 보다 높은 水準의 幸福을 살기 위해서는 이 習慣的 次元을 넘어서서 心理過程을 意志的으로 調律할 수 있어야 한다.
110. 釋迦牟尼가 그냥 있을 때 어떤 狀態로 臨在할 것 같은가? 그 狀態가〈옴〉이요. 〈옴나〉요 頓忘이요, 自性이다.
* 빔(空聚): 빔의 노래
111. 사람의 幸不幸은 境界를 만났을 때 境界解釋 如何로 決定된다.
112. 事實을 지우는 것이 아니고 생각 (念體)을 지우는 것이다.〈事實〉이라는 알갱이가 남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그것은〈事實〉이 아니고, 瞬間,〈事實〉라고 錯覺하고 있는 觀念일 뿐임을 覺醒해야 한다〈事實 自體는 永遠한 彼岸에 있을 뿐이다. Ding an sich일 뿐이다. 物自體일 뿐이요 超越者일 뿐이다〉
113. 삶이란 根境識 (三事) 이 和合함으로써 幸不幸을 느끼는 過程이다. 5分 內로 任意의 境을 設定하여 最高의 幸福을 만들라 (幸福 마중물). 頓忘은 어떤境을 設定하는 過程일 것 같은가? 頓忘은 境 中에서 가장 純粹하고 가장 眞理스럽고 가장 非無常한 境 (法境 0) 을 잡고 있는 心理過程이다.
114. 생각해보라! 至人이 이 瞬間 어떤 狀態로 있겠는가? 이 瞬間 어떤 有限에 묶여 있겠는가? 至人이 이 瞬間 有限에서 벗어나 無限으로 臨在한다면 그 秘訣이 무엇일 것 같은가? 길이 簡單히 豫想되지 않는가? 存在하는 것에 걸리지 않을 것이요, 걸리지 않으려면 걸리는 要素 (實體) 를 止揚할 것 아닌가? 그 걸리는 것은 實體이다. 그 實體를 緣起로, 空으로 把持하는 것 일 터요, 그 結果 이러히 걸림 없는 意識 狀態로 臨在하는 것이다. 極히 빤하지 않은가?
115. 聖者 正體性: 破根한 聖者, 依根에 깨어있는 聖者 아이덴티티 를 取해본다.
116. 世上은 그냥 하나이다. 衆生들은
自身의 主觀性으로 世上을
表象한다. 表象된 世上을
世上이라
함에 依해 一波萬波 늪놀이를 한다. 바로
〈分別 -- 是非 -- 執着 --
地獄 -- 戰爭〉
놀음이다. 이 때 要請되는 當爲가 있다면 그 當爲는
무엇일까? 늪 놀이의 첫 段階를 바로 잡는 것이다. 이
바로 잡기 하나가 頓忘瞑想이다.
117. 世上을 槪念的으로 經驗해 보지 않은 어린 王子와 같은 少年이 散策을 하면서 어떤 市內를 구경하고 있다고 假定해보자. 그 때의 少年의 마음 狀態는 어떤 狀態일 것 같은가? 그 狀態가〈옴나〉일 수 있다.
118. 世上이 나를 흔드는가, 내가 世上을 흔드는가? 世上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世上을 흔들며 葛藤을 겪는다.
119. 受動性구나:
〈옴〉으로부터 世上을 向해 第一步를 딛는다고나
할까.
客觀的 世上을 向해 방긋
門을 연다고나 할까.
아무튼 客體를 受動的으로 槪念없이 만난다.
槪念以前의 客觀 世界가 비쳐온다.
보이도 보지 않고, 들리되 듣지 않는 心理過程이다. 受動的
槪念以前의 現前 世界가〈구나〉의
心理過程이지만 槪念 以前만
前提된다면 能動的인 心理過程이 일어난다 해도
相關이 없다. 槪念에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魂(?)에 傷處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命題가 아닌 槪念의 許容은 깨어 있다는
前提만 있다면 學習을 위해서 必要하다.
〈卽非是名〉
卽,
受動性〈구나〉,能動性〈구나〉,槪念性〈구나〉로
段階的 區分을 두는 것도 無妨하다.
客觀的인 感覺만
있고 主觀的인 知覺이 없는 心理過程이다.
120. 修心四位
- 1) 價値觀 定立의 段階
- 2) 體解脫 (二解脫) 의 段階
- 3) 用解脫 (四解脫) 의 段階
- 4) 無意識 解脫의 段階
121. 識은 홀로서기는 不可能하며 可能하다 해도 意味가 없다. 故로 識은 宿命的으로 根을 통해 境을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이 보다 좋아야 보다 幸福하다. 無爲를 境으로 만날 때 最高 絶對의 幸福을 누린다.
122. 我空이니 내 意識이 안으로 갈 곳이 없고 法空이니 내 意識이 밖으로도 갈 곳이 없다. 이때의 意識 狀態를 〈옴〉或은〈옴나〉或은 頓忘이라 할 수 있다.
123. 여기 聖者 한분이 있다고 하자. 貪瞋痴 三毒이 사라지고 現在 特別視 해야 할 일도 없는 聖者는 現在 어떤 狀態로 있을 것 같은가? 그 狀態가 이 狀態말고 무엇이 더 있을 것 같은가? 이 狀態가 좋은 理由는 그대로 고요하기 때문이요, 업을 짓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124. 歷代 많은 靈性家들은 放下에 集中하는 表現을 많이 썼다. 放下로 因해 드러나는 表德의 Something 에는 거의 留念하지 않은 것은 一理는 있으나 한 遺憾 이다. 여기에 同事攝의 特色 하나가 있다. 遮情과 表德의 調和.
125. 意識의 展開 :
옴 -- 間 -- 구나 1 -- 구나 2 -- 我空法空 --
肯定視覺 (贊感祝配)
126. 意識의 展開過程과 그 實習
127. 이대로 그냥 存在함이 絶對요 完璧함이라니! 語默動靜行住座臥에〈그냥있음〉을 留念하라.
128. 이 마음! 스스로 天國을 만들지 못하면 누가 만들어주겠는가?
129. 이미 있는 그것을 點頭하는 것이 頓法이다.
130. 一程 水準의 幸福도 이 習慣的 次元에서 얻어질 수 있으나, 보다 높은 水準의 幸福을 살기 위해서는 이 習慣的 次元을 넘어서서 心理過程을 意志的으로 調律할 수 있어야 한다.
131. 一種의 寶物찾기: 寶物에 對한 强熱한 好奇心 (動機) 要請.
132. "자 어떠세요?"에 對한 最高絶對의 答을 提示해보라. 이것은 神祕에 쌓인 禪問答이 아니요, 理路整然한 理性의 길로 充分하다.
133. 適應이 解脫이다. 걸리는 것이 地獄이다. 걸리지 않는것이 自由요 解脫이요 極樂이다.
134. 存在를 存在이게 하라. 人間은 存在를 그지없이 죽인다.
135. 存在 自體로 그냥 無限 ok 해지는가?
136. 中毒된 사람들이 떼거리로 사는 곳이 娑婆世界이다.
137. 中毒이라 意圖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가는 心理現象이다.
138. 衆生의 意識은〈옴으로 부터 -- 있다 -- 좋다 -- 싶다 -- 썅 -- 不滿〉에 依해 苦痛과 싸움으로 墮落해 간다. 이것을 詳細하게 列擧하면 煩惱構造요 十二緣起이다. 옴을 體驗하기 위해서 欲求 (싶다) 할 때와 그냥 價値 評價만을 할 때와를 比較하여 心理的으로 어떤 差異가 느껴지는가를 느껴보고, 같은 方法으로 價値 附與를 할 때와 그냥 存在 附與만 할 때의 心理的인 差異를 느껴보고, 끝으로 存在 附與 (槪念化) 自體를 놓아버릴 때 어떤 心理가 體驗되는가를 느끼어 본다.
139.〈只今 여기〉는 哲學的인 只今 여기가 아니라 常識的이고, 現實的이며, 實存的인 只今여기 이어야 한다.
140. 只今 여기 이 마음 바로 自由하라.
141. 至福이란〈是플러스: 어떤 肯定的인 것이 더해짐〉인 것이 아니고 〈非마이너스: 苦, 罪등의 否定的인 것을 덜어버림〉인 것이다.
143. 144.지우며 頓忘하기. 그러면서 가끔 合掌으로 贊感祝配 (讚歎 - 感謝 - 祝福 - 配慮) 하기.
145. 眞空妙有: 텅 빔 (眞空)과 充滿 (妙有)
146. 眞理라는 소리에 속지 말라. 말똥먹고 病이 나으면 말똥이 眞理요. 佛經이며 바이블이다.
147. 眞理란 here And now 에 있다. 眞理란 意識 內容이다. 眞理란 意識 內容 中 至高한 絶對的인 것이다.
捨受와 覺受
모든 認知 過程에는 그에 相應 (어울림) 하는 느낌이 隨伴된다 (따라 일어남).
느낌 (受) 은 一旦 苦受, 樂受, 捨受로 나뉜다.
捨受는 覺受인 捨受와 覺受 아닌 捨受로 나뉜다.
苦受는 欲求 (必要) 가 挫折된 狀況에서 自然發生的으로 일어나는 안 좋은 느낌이다.
樂受는 欲求 (必要) 가 成就된 狀況에서 自然發生的으로 일어나는 좋은 느낌이다.
捨受는 苦受도 樂受도 아닌 中性的인 느낌 (덤담) 이다.
覺受는 無爲法을 깨달을 때 따라 일어나는 捨受이다.
苦受와 樂受는 有爲法의 成就 如何요, 覺受는 無爲法의 成就 如何이다.
無爲法 成就가 아니더라도, 捨受 狀態에서 P100 에 執着하면 衆生이요, OP 를 留念하면 (Vector는 없지 않는가하고 無백터의 意識 狀態를 卽心卽佛觀하면서 知足하면) 그 知足 自體가 붓다이다.
頓忘 六位
1. 깨달음이란 認識의 轉換이다.
2. 깨달음이란 이미 있는 것의 發見이다.
3. 깨달음이란 離苦得樂의 최고 手段이다.
4. 모든 感覺認知 課程에는 그에 相應하는 느낌이 隨伴된다.
5. 應無所住而生其心〈걸림없는 삶〉은 離苦得樂의 最高 母型이다.
6. 〈옴〉은 頓忘에 있어서 暴風의 눈과 같다.
7. 걸림없는 삶만 산다면 어찌 槪念이 흠이 되겠는가!
第 5 章 頓法
1. 頓法이란?
(1) 지금여기, 걸림에서 벗어나 自由케 하는 모든 觀點이 頓法이다. (頓法 A와 B)
(2) 그것을 理解하면 그 자리에서 解脫되어 無限感을 누리게 하는 觀點 (認識 體系) 이 頓法이다. (頓法 A)
(3) 頓法 (頓法 A) 을 理解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아야 頓法이다.
(4) 色卽是空을 把持하는 것만이 頓法이 아니다. 人類는 예전부터 生活속에서 여러 가지 知慧로 한 생각을 돌려서 걸림에서 벗어나곤 하였다. 그 또한 頓法이다. (頓法 B)
(5) 存在界는 本來 槪念 以前, 本來 超越, 本來 無限 OK 이므로 닦을 것이 本來 없다. 그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頓法 A)
(6) 頓法은 八萬四千의 經典에 가득 차 있고, 存在界 세세골골에 넘실댄다.
(7) 色卽是空, 唯識無境, 至道無難, 應無所住, 本來淸淨, 本來無一物, 一心法界, 法性圓融無二相......, (頓法 A)
(8) 同事攝 頓法: 頓忘, 4大 助波羅蜜 (頓法 A), 無數한 道具들 (頓法 B)
2. 왜 頓法이 必要한가?
(1) 存在界가 本來 隱然하다는 頓法을 알 때와 모를 때의 差異는? 毫釐有差天地懸隔
(2) 根本자리의 觀點 (頓法) 으로 볼 때와 枝末의 現象界 觀點에서 볼 때 의 差異는? 現象界, 枝末의 觀點에서 보면 世上은 苦요, 根本자리 觀點으로 보면 存在界는 이미 滅이다.
(3) 頓法을 理解하는 것이 깨달음이요, 그 깨달음을 몸에 붙여나가는 것이 닦음이다. 깨닫고 닦는 것과 깨달음 없이 닦는 것의 差異는? 깨달음 없이 닦는 것은 蒸沙作飯.
(4) 우리는 生活 곳곳에서 수없이 걸리고 있다. 이 걸림을 그대로 放置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人生이려니 여길 것인가, 아니면 그때 그때 頓法을 方便으로 벗어나 本來解脫을 살 것인가?
(5) 同事攝 頓忘은 佛敎의 에센스를 아우르고 있기에 그것 自體로써 比할 바 없는 正見이요 修行方便으로도 效率性이 뛰어나고 安全하다 (理路整然한 가르 침).
無數 頓法 (頓法 A)
01. 應無所住而生其心
걸림 없이 산다.
무엇이든 行하되 痕跡이 없다.
기러기 虛空을 나르나 자취가 없다.
02.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存在하는 어떤 것이 꿈 아닌 것 있겠는가?
幻이요 거품이요 그림자요 또한 이슬이요 번개라. 이처럼 觀照할 때 佛祖라 이른다네.
03.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一切의 苦痛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五蘊이 空함을 觀照함이 길이라네.
04. 槪念以前: 槪念으로 規定하지 않고 바라보기. 槪念으로 規定하면서 보는 것이 더 제대로일까, 槪念으로 規定하지 않고 보는 것이 더 제대로일까? 勿論 槪念으로 規定하지 않고 보는 世上이 더 제대로 일 것임은 當然하다. 지금바로 人爲의 槪念놀음이 없는 狀態로 바라 보라. 天下가 自---然---이리라...어떤가 이때 當身의 意識은 어떤 狀態인가?
05. 不思善不思惡 : 中國 禪佛敎의 巨匠, 六祖 慧能이 五祖 弘忍으로부터 法의 認可를 받고 南下하고 있었다. 弘忍의 弟子이자 慧能의 師兄인 慧命스님께서 南下하고 있는 慧能을 붙들고 法을 請한다. 慧能大師는 不思善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 本來面目? 라고 묻는다. 卽 善도 惡도 생각하지 않을때 貴下의 本來面目 (本마음) 은 무엇인가 하는 質問이다. 이 質問이 떨어지자마자 慧命스님은 깨닫는다. 어떠한가? 이 글을 接하시는 分이 바로 慧命스님이시다. 善도 惡도 생각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것이 있는가? 準備된 자는 이 質問 하나로 畵龍點睛을 할 수 있다.
06. 元曉骸骨通
07. 道可道非常道
08. 單子論
09. 本來無一物
10. 色卽是空
11. 唯識無境
12. 卽非
13. 物自體:
- 〈1〉어떤 것이든 그 存在 自體는 物自體이다. 가만히 主觀性이 介入되지 않은 物自體인 天下를 느껴보라.
- 〈2〉世上에 對해서 무언가 價値判斷을 하는 것은 世上이 그러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主觀的으로 自身의 필터 (filter) 를 通해서 보는 世界일 뿐이라는 것을 고개 끄덕여보라.
- 〈3〉結論的으로 世上을 云謂하려면 世上 自體를 그대로 云謂해야 할 터이니, 自身의 主觀性을 排除하고 봐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살짝 自身의 主觀性 (六根 等) 이라는 主觀的인 필터 (filter) 를 제치면서 느껴보라. 이때 느껴지는 것 이 어떠한가 보라. 여기에서 어떤 〈아하!〉가 首肯되지 않는가?
14. 放下: 지금, 여기에서 안팎으로 아무것에도 마음 (意識) 을 보내지 (두지, 集中하지, 주지) 않고 그냥 있는다. 이러하고 있을 때의 狀態를 鮮明히 느낀다면 (意識한다면) 이 意識過程이 옴이요 或은 옴나요 或은 頓忘이다.
손을 본다. 이 때 나의 마음은 손이다.
손을 치운다. 손이 사라진 자리에 虛空이 드러난다.
이 때 내 마음은 虛空이다. 虛空을 치워본다.
이 때 오직 〈그것〉만이 意識된다. 손을 바라보게 한다 ---- 느낌
손을 치우고 虛空을 바라보게 한다 ---- 差異느낌
虛空을 치웠을 때 남는 것 ------- 差異느낌
第 6 章 最小限의 人文學
2. 念體論
(1) 事實인가, 내 생각인가
事實과 念體를 區別한다는 것은 대단히 重要하다. 一旦 工夫人은 內外의 모든 것, 宇宙에 存在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念體라고 보면 옳은 것이다. 意識圈 안에서 云謂하기 以前의 모든 存在는 物自體일 뿐이요, 超越者요, 無規定者요, 無라고 할 수는 없지만 有라고도 할 수 없는 空한 그 무엇일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그러한 模樣, 그러한 色깔, 그러한 크기를 規定해 놓고 그것이 實在로서 存在한다고 여긴다. 이들을 일러 素朴實在論者라고 한다. 超越者는 받아들이는 者의 主觀的 感覺認知 體系를 通해 現象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者들의 主觀的 感覺認知體系가 類似한 까닭에 비쳐지는 現象도 類似해진다. 그래서 마치 客觀的으로 存在하는 現實 世界가 있는 것처럼 經驗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깨닫고 보면 그 現實世界는 끝내 〈事實〉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者의 〈事實念體〉인 것이다.
그래서 素朴實在論者의 範疇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只今까지 事實로 여겨지던 世界가 事實 (事實念體) 라는 것을 깨닫고 그 事實念體의 너머에 제대로 客觀的인 實在로서 있을 法한 世界를 사무치게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칸트가 그 代表的인 한 사람인데 칸트는 千辛萬苦의 瞑想 끝에 그 客觀的인 實在를 物自體라 이름하고 ‘(物)自體는 神의 認知 對象일 뿐 人間으로서는 不可知의 超越者이다’고 宣言하기에 이른 것이다. 唯神論者였던 칸트는 그 物自體를 神은 認知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어찌 神이 認知할 수 있겠는가? 神이 認知했다면 그것은 또한 神의 主觀的인 感覺認知體系에 爲해 비쳐진 現象일 뿐이다. 物自體는 決코 그 어떤 누군가의 規定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고 다시 永遠한 彼岸으로 물러나버린다. 物自體는 어떤 이의 그 때, 그 狀況의 感覺認知體系에서는 그렇게 비쳐지고 있는 그 무엇일 뿐이다.
儼然한 事實로 여겼던 앞山 뒷山이 〈事實〉이 아니고 念體〈事實念體〉라면 다른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諸般 念體들은 事實念體, 印象念體, 信念念體, 意志念體, 欲求念體, 感情念體 程度로 整理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念體를 事實視 或은 眞理視하여 스스로 固着되고는 이웃과 對立하며 싸움과 戰爭을 일으켜서는 아니 될 일이다. 工夫人들은 “眞理, 眞理하지 말고 方便, 方便 하라.” 하는 警告를 깊이 留念할 일이다. 이 글은 事實과 念體에 對한 哲學的인 論議를 爲한 것이 아니다. 但只 自身의 主觀的 感覺認知에 依한 表象物을 ‘事實’이라고 執着하면서 苦痛과 戰爭을 불러오는 일을 防止하기 爲해서 念體論을 方便으로 끌어왔을 뿐이다.
(2) 肯定 念體, 否定念體
※ 念體란 一旦 正見 (바람직한 價値觀) 과 같은 肯定念體와 〈있다 - 좋다 - 싶다 - 썅 - 不滿〉과 같은 否定念體로 나눌 수 있다. 肯定念體는 우리의 幸福解脫에 도움을 주니 必要한 存在이지만 우리를 不幸케 하는 否定念體는 淨化해야 한다.
※ 意識 空間은 自性空間과 念體空間으로 構成되어 있다. (嚴密히 말하면 自性 또한 念體이다. 槪念 作用이 없이 純粹 覺醒狀態인 自性 또한 우리 意識內의 現象이므로 念體라 할 것이다. 그러나 自性은 우리에게 어떤 걸림도 되지 않기에 걸림이 되는 否定念體와 區別된다. 이것이 이른바 ‘無爲念體’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自性空間이란 구름이 끼지 않은 虛空 같은 마음이요, 念體空間이란 虛空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들, 太陽 - 달 - 별 - 구름 等의 것들과 같은 多樣한 느낌念體, 欲求念體, 意志念體, 信念念體, 印象念體, 事實念體 等이다.
※ 無限한 自性空間임에도 不拘하고 否定念體들에 執着되고 中毒된 나머지 無限하게 열린 自性空間을 自覺하고 無限의 열린 마음으로 살 것인가를 묻고 答해야 한다.
※ 優先〈否定念體 100 - 自性 0〉와 같은 깜깜한 狀態에 있더라도 自性을 믿는 것이 좋다. 마치 하늘에 온통 구름이 가득하여 열린 맑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구름 저편에는 탁 트인 하늘이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다음은 自性를 直接 經驗해야 한다. 마치 구름이 걷힌 구멍을 通해 하늘을 直接 보는 것과 같다. 信解行證의 信解를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自性經驗이 自在로워야 한다.
※ 眞正 어찌할 것인가? 덕지덕지 시커먼 否定念體들을 달고 살 것인가, 버리고 살 것인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짊어지고 다음 世上까지 끌고 가서 그 녀석들로부터 갖가지 짓궂은 괴롭힘을 - 적게는 근심 걱정과 頭痛, 腹痛, 齒痛, 腰痛으로부터, 크게는 八熱 八寒의 地獄까지 -- 當해야 하는 녀석들, 어찌해야 할 것인가?
(3) 念體 整理
※ 一旦 工夫人은 自身의 意識空間에 떠돌고 있는 念體에 對한 自覺 乃至 整理에 있어서 敏捷해야 한다.
※ 바람직한 念體라 해도 그 念體를 眞理視하지 않고 方便視해야 한다. 眞理視한다면 執着 에너지가 생기거나 獨善的 態度가 생겨서 意識空間에 痕跡을 남기고 痕跡을 强化하여 解脫에서 멀어진다.
※ 方便視하더라도 자칫 깨어있지 않으면 意識에 그림자를 남겨 解脫과는 逆行할 可能性이 있다. 그러나 끝내 方便 念體는 不可避하며 方便念體를 뗏목으로 하여 此岸에서 彼岸에 건너가게 된다.
貪瞋癡라는 바람직하지 않는 念體는 말할 나위 없이 徹底하게 淨化해야 한다.
※ 그러나 淨化해야 할 貪瞋癡라 하더라도 煩惱卽菩提 次元에서 貪瞋痴에 對한 抵抗 에너지를 갖지 않음으로써 意識空間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賢明하다.
(4) 念體 지우기
念體에 對해서 觀點 定立을 잘 함으로써 知足瞑想, 非我瞑想, 나지사 瞑想, 죽음瞑想 等 多樣한 接近法으로 貪瞋痴 淨化 作業을 한다. 同事攝에는 念體지우기를 爲한 多樣한 道具가 있다.
그 道具들을 利用하여 念體를 지우고 虛空으로 回歸한다. 지울 때 느낌을 吟味한다. 虛空으로 回歸될 때 亦是 느낌을 吟味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