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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 寫本사본 마음 나눔터

동사섭 큰스님의 오늘의 말씀과 마음 성찰의 사경(寫經)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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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
유소림(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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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오늘의 말씀>은 동사섭의 여러 過程과정에서 큰스님께서 직강하신 내용을 錄取녹취, 整理정리한 것입니다. 큰스님 강의를 거듭 들으며 꼼꽁히 錄取녹취하는 過程과정은 저에게 참으로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2026년 8월 6일(목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31)
#24

애쓰지 말고 그냥 있어 보라

그냥 있어보라. 지금여기, 그냥 있어보라. 그냥 있는 감이 들것이다. 그것이면 全部전부다. 거기에 補助道具보조도구가 하나 있다. 我空法空아공법공이다. 空理공리로 에너지가 샐 수 있는 곳을 完全완전 源泉원천 封鎖봉쇄시키는 것이다. 이라고 하는 이것은 慈悲자비 중의 慈悲자비이다.

世上세상空理공리가 나왔다는 것은 정말 多幸다행한 일이다. 空理공리가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모두 다 있게 된다. 實體실체가 있게 된다. 그래서 그 實體실체의 늪에 수없이 빠지게 된다. 그것에서 救援구원해주는 가르침이 바로 空理공리이다. 지금 네가 빠져 있는 그것은 없는 것인데 왜 있다고 여겨면서 빠져드는가 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大乘佛敎대승불교支配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 空理공리이다.

宇宙우주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애쓰지 말고 淡白담백하고 便安편안하게 그냥 있어보라. 그냥 있는 것이 그냥 便安편안하니 좋다고 하는 程度정도만 되어도 똔망瞑想명상◯票공표를 쳐보라.

2026년 8월 5일(수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30)
#23

釋迦牟尼석가모니와 나는 얼마큼 다른가

나는 釋迦牟尼석가모니와 얼마나 다른가, 한 번 瞑想명상해보시라. 釋迦牟尼석가모니의 피도 나의 피도 빨갛다. 釋迦牟尼석가모니도 손톱이 있고, 나도 손톱이 있다. 釋迦牟尼석가모니心臟심장이 하나요 나도 하나다. 나도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가 있고 釋迦牟尼석가모니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가 있다. 가시에 찔리면 나도 아프고 釋迦牟尼석가모니도 아프다. 이렇게 같은 것이 거의 全部전부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대할 때 一旦일단 100점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라. 어디 100점만 될 것인가. 태어나서 무엇인가 좀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102, 103점이다. 그래서 109부터 道人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점수는 108.9점이라고 採點채점했다. 여러분이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이 여러분의 마음을 거스르게 하는지 살펴보시라. 거스르게 한다면 自身자신을,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금 둘러보라. 釋迦牟尼석가모니는 110점인데 99%가 같다고 했으니 一旦일단 100점 以上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가. 사람을 만났다 하면 가장 빠른 速度속도適應적응하시라.

2026년 8월 4일(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9)
#22

태어날 때부터 100점이다

同事攝동사섭 寸鐵촌철에 ‘適應적응解脫해탈이다.’ 하는 것이 있다. 별 것 아닌 말로 들리겠지만 생각해볼수록 맞는 말이다. 여러분이 適應적응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제일 適應적응이 어려운 것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도 適應적응이 잘 된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굉장한 靈性영성 水位수위를 지닌 사람이다. 나도 사람에 걸리곤 하였다. 특히 나를 밉다고 하는 사람에게 걸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보든 그냥 한 그루 나무를 보듯이 걸리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건 함께 했을 때 便安편안하게 느껴지면 一旦일단 幸福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肯定的긍정적으로 보는 方法방법을 생각해냈다.

어떤 衆生중생이 부처가 된다면 어느 地點지점에서부터 부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普通보통 100점이 되어야 부처라고 생각한다. 0점에서 出發출발하여 100 점이 되어야 부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충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면 一旦일단 100점이다. 태어나자마자 100점. 그리고 그 100 점짜리가 平生평생 努力노력해서 부처가 되는데 부처가 完成완성되었다고 하면 完成완성된 부처는 110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0점이나 10점으로 태어나서 100이 되어야 부처가 된다고 생각할 때는 90 이상 되는 目標목표를 향해서 뽀드득 뽀드득 올라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태어날 때 100 점으로 태어나고 10점 努力노력해서 110점 이 되면 부처가 된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면 더 좋은가? 110 쪽이 단연 좋을 것이다. 내가 점수를 매겨보니 釋迦牟尼석가모니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99.99가 釋迦牟尼석가모니와 같다. 다른 것이 조금 있다면 釋迦牟尼석가모니便安편안한데 우리는 걸린다는 그런 程度정도差異차이뿐이다.

2026년 8월 2일(일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7)
#21

마이너스 쪽 긴장, 플러스 쪽 긴장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낫다. 그러면 즐거움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 고통은 마이너스 쪽의 긴장이다. 즐거움은 플러스 쪽 긴장이다. 플러스 쪽 긴장이 그나마 마이너스 쪽 긴장보다는 더 낫다. 그래서 苦受고수보다는 樂受낙수가 더 낫다. 그렇다면 樂受낙수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捨受사수다.

밑으로 긴장하는 것은 고통이고 위쪽으로 긴장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즐거움은 中毒중독을 부른다. 어떤 特殊특수한 경우에는 고통 쪽으로 中毒중독祈禱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自害자해를 한다. 그것은 疾病질병이라고 할 것이다. 보통은 즐거운 쪽으로 中毒중독된다. 그래서 플러스 쪽 긴장에 길들여지고 中毒중독되면 그래야만 人生인생을 사는 것처럼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 흐름에 빠지는 것은 悲劇비극이다.

그런데 그 어느 쪽으로도 긴장이 없는 狀態상태, 中毒중독되지 않은 狀態상태가 있다. 그것이 捨受사수다. 이것을 水平情緖수평정서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捨受사수樂受낙수보다 좋다고 하는 것이 價値觀가치관 축으로, 그리고 실제로 體驗체험 축으로도 끄덕여져야 한다. 그것이 卒業狀졸업장이다. 그러니까 항상 價値觀가치관體驗체험을 함께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룰 때는 中道的중도적이어야 한다. 捨受사수가 더 낫다고 하니까 시도 때도 없이 捨受사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道人도인도 춤을 추며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깨어 있는 狀態상태에서 즐거움을 누려야 道人도인이라고 할 것이다. 苦受고수에 길들여졌던 습은 樂受낙수를 통해서 治癒치유되고 解決해결된다. 그러니까 무조건 捨受사수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충분히 즐거워지고 幸福행복해져야 한다. 그런데 한참 樂受낙수 속에 있다 보면 이것은 좀 아니네 하는 단계가 필히 온다. 그것은 進化진화가 한 단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6년 8월1일(토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6)
#20

瞑想명상은 생각 水準수준을 높이는 練習연습

생각 레벨을 놓이는 것, 잘 생각하는 것이 瞑想명상이다. 잘 생각만 하면 내 안의 地獄지옥과 밖의 전쟁은 끝나게 된다. 그래서 知足지족 생각을 잘 하고 非我비아 생각을 잘 하고 죽음 생각을 잘하고 나지사 생각 잘 하는 것이 동사섭의 수심 방법이다.

人間關係인간관계를 잘 생각해보자. 자祈禱기도 인간이면서 왜 인간과 부딪치는가. 그 놈과 부딪쳐서 내가 氣分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면 누가 손해인가. 氣分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이 내 氣分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低質저질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氣分기분이 나빠진다.

낮은 水準수준의 생각을 높은 水準수준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瞑想명상이다. 바꾸는 방법은 理致이치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 水準수준을 높이면 幸福행복 오케이, 解脫해탈 오케이, 平和평화 오케이가 되는 법이다. 생각 水準수준이 다 決定결정해버린다. 동사섭의 고급 過程과정은 마지막 생각을 練習연습하는 修練場수련장이다.

2026년 7월 25일(토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5)
#19

나의 겉모습은?

人品인품 속에는 겉모습도 들어간다. 그 겉모습을 인격이라고 한다. 겉모습의 첫 째는 우선 얼굴이 풍기는 印象인상이다. 물론 印象인상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和顔愛語화안애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얼굴 表情표정을 밝게 하는 練習연습을 하라. 내 印象인상이 부드럽고 맑은 印象인상인가를 살펴라. 얼굴 筋肉근육이 부드러워지면 엔돌핀이 나온다고 한다. 그 다음엔 言語언어行動행동이다. 表情표정, 言語언어, 行動행동을 잘 管理관리하라. 語默動靜行住坐臥어묵동정행주좌와가 여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머가 있으면 좋다. 그 다음은 生動感생동감이다. 말과 몸짓에서 生動感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동사섭은 幸福論행복론, 人品論인품론, 共同體論공동체론이다. 동사섭 프로그램을 배우고 실천하면 幸福행복해지고 훌륭한 人品인품이 길러지고 내 가정이 幸福행복해진다. 이대로 살아가면 지구 공동체, 宇宙우주 공동체에 기여하게 된다. 여러분은 동사섭의 主人公주인공이다.

2026년 7월 24일(금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4)
#18

人品인품 同心圓동심원 3번, 共同體 意識공동체 의식

내 마음이 自由자유롭고 인격도 괜찮은데 全體전체를 보듬는 마음이 약하다고 해보라. 그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全體전체를 보듬는 마음, 동사섭 식으로 말하자면 大願之心대원지심, 이것이 내 마음의 自由자유, 내 모양새와 어우러져 人品인품을 이룬다. 여러분들은 공동체적으로 어떠한가. 얼마나 안아지는가. 宇宙우주 全體전체가 한 몸이라는 것이 確然확연한가. 내 공동체 사람들과는 어떠한가.

내 공동체 속에 미운 놈이 하나 있다면 그놈을 빼고 한 몸이라고 할 것인가. 내 職場직장의 미운 상사, 그놈은 빼고, 한 공동체라고 할 것인가. 그것이 다 공부거리이다. 人生인생人品論인품론이다. 人生인생解脫論해탈론이요 共同體論공동체론이다.

2026년 7월 23일(목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3)
#17

人品인품 同心圓동심원 2번, 인격

同心圓동심원 두 번째는 인격이다. 인격은 人品인품部分集合부분집합이다. 인격은 모양새이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모양새를 떠올려 보라. 여러분들의 모양새가 아름다워서 스스로 尊敬존경되는 모양새인가 생각해 보라. 내 모양새를 떠올리면 氣分기분도 좋고 尊敬존경된다. 여러분은 그렇게 되는가. 된다면 너무 좋을 것이다. 그런데 重要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내 모양새를 보아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그냥 好感호감, 尊敬心존경심이 일어난다. 그러려면 言語언어가 다듬어지고 行動행동이 다듬어지고 궁극적으로는 人品인품 次元차원에서 안으로 마음이 다듬어져야 훌륭한 人品인품자라 할 것이다. 내 마음이 한없이 自由자유롭고 慈悲자비롭고 自在자재로우며 인격 次元차원에서 내 겉모양새도 괜찮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해야 되지만 言語언어 管理관리行動행동 管理관리도 해야 한다.

2026년 7월 22일(수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2)
#16

걸림 없음, 人品인품 同心圓동심원 1번

동사섭의 전 過程과정人品인품에 대한 靑寫眞청사진이다. 그 人品인품 同心圓동심원 제일 안쪽에 自由자유가 있다. 그것은 解脫해탈이다. 무엇이 自由자유인가. 法理법리理解이해할 때는 더 이상 질문이 일어나지 않는 곳까지 밀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自由자유란 무엇인가.

自由자유는 내 識主體식주체 기능이 객체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말은 대단히 쉬운 것 같지만 이것이 人品인품으로 영글어들려면 뼈를 깎는 努力노력을 해야 한다. 自由자유境界경계에 걸리지 않는 德性덕성을 말한다. 境界경계에 걸리지 않는 것이 대수일까. 여러분이 혹시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瞑想명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걸림은 바로 괴로움으로 이어진다. 걸린다는 것은 執著집착한다는 것과 같다. 執著집착하면 괴롭다.

그래서 自由자유, 解脫해탈이라고 하면 그 에센스 概念개념은 걸리지 않는 것이다. 걸림 없음, 應無所住응무소주, 무념(無念), 無常무상, 무주(無住), 등등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至高한 人品지고한 인품이 되었을 때는 여러분의 마음에 어디에도 일체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適應적응解脫해탈이라는 말이 나왔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미운 놈이 나타났다. 이것은 여지없이 걸린 것이다. 解脫해탈했다고 하면 미운 놈 자체가 사라진다. 여러분들은 미운 놈이 있는가, 미워해봐야 내가 손해다. 걸림이 없다고 하는 이 단순한 말씀이 여러분 속에 活句활구로 꽂혀야 한다. 내 마음이 境界경계에 걸림이 없다, 이것이 얼마나 큰 主題주제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境界경계에 걸림이 없는 것, 그것이 解脫해탈이다. 그것이 至高한 人品지고한 인품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첫 概念개념이다. 걸림 없는 마음이 되면 거기에서 慈悲자비가 나오고 自在자재가 나온다. 自由자유 속에 慈悲자비自在자재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라.

2026년 7월 20일(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20)
#15

동사섭, 人品인품의 설계도

宇宙우주歷史역사進化진화歷史역사이다. 宇宙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어떤 식으로든 無常무상하게 변화 발전해가는 過程과정에 인간이 어떻게 해서 進化진화해 나온다. 이 인간이 宇宙우주 太初태초부터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지구 위에 언젠가 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 살기 시작했던 무렵이 어떤 모양새였을까.

人生인생人品論인품론이라고 하면 그 속에는 幸福論행복론, 人格論인격론, 共同體論공동체론이 다 들어가 있다. 여러분들 속에 至高한 人品지고한 인품을 지향해가리라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가. 여러분은 至高한 人品지고한 인품자가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전 宇宙우주考慮고려하는 의식을 갖추면 좋지 않겠는가. 한번밖에 없는 人生인생을 천박하게 굴리다 가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삶이라고 하는 것을 그럭저럭 굴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品格품격 있게 굴리다 가면 좋지 않겠는가. 이 삶이 한번만으로 끝나버린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品位품위 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人生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이 생을 적당히 살아야겠는가, 아니면 다음 세상을 위한 준비의 過程과정까지 생각하며 살아야겠는가. 다음 생을 위한 준비 過程과정으로도 살아야 한다. 今生금생來生내생, 來生내생, 來生내생을 위한 機會기회의 장이다. 이 機會기회의 장을 잘 活用활용해서 나의 人品인품 水準수준을 이 정도로는 올려놓겠다고 하는 마음을 딱 가져주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人品인품 水準수준을 블랙 벨트로 높여 보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人品인품 水準수준을 높이는 것인가. 그 대안, 그 설계도로 해서 동사섭만한 것이 없다. 동사섭은 불교가 주 교재이나 宗敎종교를 뛰어 넘어 다른 文化문화권의 인문학까지 끌어다 불교 것과 합해서 발효시킨 것이 동사섭이다.

2026년 7월 19일(일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9)
#14

人生인생幸福論행복론, 人品論인품론, 共同體論공동체론이다

人生인생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밤까지의 삶, 한 살부터 백 살까지의 삶, 그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幸福행복을 지향해가는 幸福論행복론이다. 그리고 人生인생人品論인품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人品인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선 사람의 모양새가 떠오른다. 모양이라고 하면 겉모양과 속모양이 있다. 겉모양은 몸뚱이 쪽 모양으로 떠오르고 속모양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 다양한 德性덕성이 떠오른다. 사람의 삶이란 자기의 모습管理관리해가는 過程과정이 아니겠는가. 평생 자기 모습을 管理관리 하다 가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삶은 人品論인품론이라고 해도 좋다.

人生인생이란 共同體論공동체론이라고 해도 좋다. 사람의 한 생을 보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산다. 태어나는 瞬間순간, 누구와 함께 하였는가. 어머니와 함께 하였다. 그 다음 家族가족과 함께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 그리고 親舊친구들과 함께 하였다. 우리는 매일 더불어 있다. 關係관계, 함께 함, 이것이 人生인생의 중대한 德性덕성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더불어서 잘 살아보자, 우리 家族가족들, 우리 職場직장, 우리 社會사회, 우리 國家국가 더불어서 南北남북 더불어서 잘 살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人生인생共同體論공동체론이라고 해도 좋다.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8)
#13

原理원리가 대가를 낳는다

동사섭에는 原理원리가 대가를 낳는다는 寸鐵촌철이 있다. 사람은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있다. 이 말씀이 바로 原理원리를 뜻한다. 이 세상은 아날로그로 꽉 차있다. 그리고 그 아날로그 속에는 바둑판보다도 더 치밀하게 디지털이 있다. 그런데 그 原理원리 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그냥 아날로그이다. 秩序질서, 理致이치 등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두루뭉술하게 그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그대로 세상이다. 그런데 知性지성축으로 賢明현명하게 생각하는 智慧지혜를 지닌 사람은 펑퍼짐하게 열려 있는 아날로그 속에서 어떤 理致이치를 본다. 그 理致이치, 그것을 原理원리라고 한다.

동사섭 수련회에서는 그 原理원리를 공부한다. 사람의 마음은 두 축으로 되어 있다. 느낌은 目的목적축이고 생각은 방법축이다. 방법이 좋으면 그 결과로 느낌이 좋아진다. 여러분이 동사섭에서 배운 原理원리, 瞑想명상, 그것은 생각축이다. 생각을 다른 말로 思惟사유, 思索사색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생각을 스무 가지 정도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代表的대표적인 것은 思惟사유, 思索사색이다. 그것은 瞑想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말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은 뜻이다. 瞑想명상은 곧 思索사색, 思惟사유이다, 여러분은 동사섭 수련에서 생각을 한다. 무엇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가. 돈망에 대해, 知足지족에 대해, 無我무아, 죽음 그리고 나지사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잘 하면 이 마음에 解脫感해탈감이, 幸福感행복감이 차오른다. 아직 별 느낌이 없다고 하는가. 그러면 그 생각을 反復반복하라. 모든 감각인지 過程과정에는 그에 相應상응하는 느낌이 오게 되어 있다.

2026년 7월 17일(금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7)
#12

동사섭의 修心體系수심체계

동사섭 主波羅蜜주바라밀은 돈망 瞑想명상, 주助波羅蜜조바라밀知足지족, 非我비아, 나지사, 죽음瞑想명상 등 4개이다. 波羅蜜바라밀이라는 말은 方便방편, 방법, 뗏목이라는 뜻이다. 이 언덕에서 강 건너 저 언덕으로 가려면 뗏목이라는 道具도구, 方法論방법론이 필요하다.

동사섭의 주方便방편인 돈망이 確然확연해지면 이 몸뚱이를 나로 알고 있던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나와 세상과의 間隔간격이, 나와 저 쪽과의 境界경계가, 限界한계가 사라져서 宇宙우주가 된다. 宇宙우주가 내가 된다.

助波羅蜜조바라밀 1은 知足지족 瞑想명상이다. 知足지족 瞑想명상幸福행복의 99%를 決定결정한다. 助波羅蜜조바라밀 2번은 非我비아 瞑想명상이다. 내가 아니다. 내가 없다. 내가 아니라는 철학이다. 이것을 瞑想명상적으로 다루어서 우리가 體驗체험을 해야 한다. 非我비아를 머리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몸으로 느껴야 하다. 3번 助波羅蜜조바라밀은 나지사瞑想명상, 4번 助波羅蜜조바라밀은 죽음瞑想명상이다.

그리고 나머지 무수한 細波羅蜜세바라밀이 있다. 細波羅蜜세바라밀은 주조 波羅蜜바라밀을 뺀 나머지 전부이다. 숨 쉬는 것, 밥 먹는 것, 다리로 걷는 것 등등 모두가 細波羅蜜세바라밀이다. 여러분을 幸福행복하게 해주는 것 중에서 주조 波羅蜜바라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모두 細波羅蜜세바라밀이다. 절에 가고 敎會교회에 가는 것도 細波羅蜜세바라밀이다, 그러니 細波羅蜜세바라밀이 훨씬 더 重要중요하다. 細波羅蜜세바라밀이라고 하니까 重要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細波羅蜜세바라밀이라고 하여 주助波羅蜜조바라밀 아래에 두는가. 그것은 누구라도 이미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細波羅蜜세바라밀의 1번을 말하라고 하면 健康건강 波羅蜜바라밀이다. 이것이 동사섭 수심 體系체계이다.

2026년 7월 16일(목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6)
#11

癡貪瞋치탐진 3독

사람의 欲求욕구(needs) 자체는 탐(desire)이 아니다. 그런데 이 欲求욕구現實현실을 보면 어떤 水準수준이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 마음은 平靜평정狀態상태다. 그런데 그것을 꼭 끌어와야겠다고 하면서 어느 선을 넘게 된다. 그래서 欲求욕구執著집착이 되면 그것을 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지 않는 欲求욕구의 경우는 엔돌핀을 나오게 한다.

그런데 欲求욕구 對象대상이 생겼다 하면 現實현실적으로 그 欲求욕구가 선을 넘지 않기가 힘들다. 道人도인들이나 그 선 안에 머문다. 道人도인이 아닌 경우는 전부 그 속에 빠져 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그것이 탐이다. 그 탐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憤怒분노가 된다. 그 欲求욕구에 대해 ‘努力노력했는데 안됐어.’ 하면서 웃고 말 수도 있다. 그런데 欲求욕구熾烈치열해서 탐이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속상한 心理심리 狀態상태憤怒분노, 불교식으로 말하면 진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癡貪瞋치탐진을 3독이라고 한다.

동사섭 煩惱번뇌構造구조理解이해, 이것은 마음공부에 굉장히 重要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우리 마음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그런 心理심리健康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貪瞋癡탐진치는 어떤 식으로든 淨化정화되어야 한다. 그 方便방편이 바로 동사섭의 1개 主波羅蜜주바라밀과 4개 助波羅蜜조바라밀이다. 主波羅蜜주바라밀인 돈망瞑想명상概念以前개념이전의 의식 狀態상태確認확인하는 瞑想명상이요, 知足지족병상은 不滿思考불만사고淨化정화하고 非我비아瞑想명상實體思考실체사고價値가치 사고를 淨化정화하며 죽음瞑想명상은 탐을, 나지사瞑想명상은 진을 淨化정화하는 方便방편이다.

2026년 7월 15일(수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5)
#10

세 가지 惡思考악사고, 세 가지 어리석음

引力인력이든 斥力척력이든 그것은 어떤 싶음, 欲求욕구를 말한다. 그런데 그 欲求욕구가 뜻대로 成就성취되면 氣分기분이 좋지만 挫折좌절되면 속이 상한다. 여러분들의 欲求욕구는 잘 成就성취되는 쪽인가. 대부분 잘 되지 않는 것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속상한 그 마음이 憤怒분노이다. 實體思考실체사고-價値思考가치사고-欲求욕구-憤怒분노. 이 過程과정을 몇 번이나 反復반복하겠는가. 수도 없이 反復반복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欲求욕구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憤怒분노가 터진다. 또 憤怒분노, 또 憤怒분노, 憤怒분노…. 이러한 過程과정에서 한 가지 사고가 發達발달한다. 해도 해도 成就성취되지 않는다는 ‘不滿思考불만사고’가 그것이다. 그 不滿思考불만사고實體思考실체사고, 價値思考가치사고 밑바탕에 깔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實體思考실체사고, 價値思考가치사고, 不滿思考불만사고3大 惡思考3대 악사고라고 한다.

3大 惡思考3대 악사고가 바로 어리석음이다. 概念개념 이전인데 자신이 공연히 概念化개념화를 시켰으니 어리석음이요 본래 價値가치를 떠나 있는 것인데 價値가치가 있다, 없다 하고 생각하니 어리석음이다. 또한 따지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축제요 축복이요 한없는 肯定性긍정성이 나부끼고 있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자기가 갖지 못한 부분만을 생각하면서 不滿불만을 하고 세상 전부를 끌고 들어와 不滿불만을 하니 어리석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치는 바로 이 3大 惡思考3대 악사고를 말한다.

2026년 7월 14일(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4)
#9

實體思考실체사고價値思考가치사고, 동전의 양면

어떤 對象대상에 이름을 붙였다고 하면 그 이름은 일회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反復반복된다. 反復반복되고 反復반복되면 그것이 내 속에 습으로 변한다. 눈을 뜨자마자 “어머니!” 하였다. 實體思考실체사고를 한 번 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 하겠는가. 그러니까 어머니라고 하는 그 概念개념이 골수에까지 박히게 된다. 그래서 實體실체시가 反復반복되면 그것이 딱딱한 것으로 변해 내 의식을 옥죄게 된다.

그런데 實體思考실체사고가 되었다고 하면 그 實體실체無心무심하게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價値가치성을 띄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價値가치성을 賦與부여하기 때문에 實體실체시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瞑想명상을 조금 해보면 참으로 그러함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價値가치 次元차원에서 意味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실제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 이름을 붙였다 하면 그 밑에는 價値思考가치사고前提전제되어 있는 법이다. 論理的논리적으로 實體思考실체사고 다음에 價値思考가치사고를 이야기할 뿐이지 現實현실적으로는 동시에 일어난다.

여기에 컵이 있다. 그리곤 곧장 ‘컵이 예쁘네, 얼마짜리일까’ 하고 價値思考가치사고에 들어간다. 아니면 ‘컵에 왜 이따위 그림을 그려놓았지?’ 하면서 否定的부정적 價値가치로도 바라본다. 實體실체 사고로 그 존재성이 드러나면 그것은 곧바로 價値가치성으로 遁甲둔갑한다. 그래서 플러스 價値가치는 끌어오려고 하고 마이너스 價値가치排斥배척하려고 한다.

‘쓰레기’라는 實體실체가 떴다. 그러면 아, ‘더러운 쓰레기’ 하면서 否定價値부정가치賦與부여된다. 그러면 그 쓰레기를 얼른 없애버려야 된다. 그래서 引力인력 내지 斥力척력이 바로 나온다. 이것이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다. 스스로가 사는 모습을 이렇게 整理정리해본다는 것은 重要중요作業작업이다. 여러분이 여러분들의 人生인생을 사랑한다면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客觀的객관적으로 整理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2026년 7월 13일(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3)
#8

實體思考실체사고, 추락의 첫 단계

幸福행복을 막는 것은 煩惱번뇌이다. 그러므로 煩惱번뇌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식으로 똬리 틀고 있는가를 理解이해할 필요가 있다, 煩惱번뇌發生발생 構造구조理解이해해야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선 아무 생각 없이 無心무심하게 깨어 있어보라.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概念以前개념이전으로 그냥 있는 것이다. 그 狀態상태에 있다가 무엇인가를 떠올려 보라. 어머니를 떠올려 보라. 아니면 눈앞에 있는 어떤 對象대상을 보며 그 이름을 말해보라. 그리곤 보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라.

사람들은 눈을 뜨고 對象대상을 보면서 “컵!”이라고 한다. 컵이라고 이름 붙이는 活動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무엇이라고 하는 概念化개념화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實體思考실체사고이다. 그것이 墮落타락第一步제일보이다. 이브가 善惡果선악과를 딱 따먹은 瞬間순간이 바로 實體思考실체사고瞬間순간이다. 善惡果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내 識主體식주체 기능이 識客體식객체를 떠올리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識主體식주체識客體식객체를 잡고 생각하는 作業작업을 하기 이전의 마음, 主客주객 活動활동 이전의 마음을 概念以前개념이전, 無心무심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음속에 속에 아무것도 잡고 있지 않은 狀態상태를 말한다. 主客活動주객활동을 할 때는 마음속에 念體염체가 생기게 되어 있다. 마음속에 이런 念體염체가 생기기 이전, 概念개념 이전을 反復반복하여 練習연습해 보라.

無心무심에 통하지 않고는 자나 깨나 主客주객 놀음, 概念개념 놀음을 하게 된다. 概念개념 놀음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이 심한 表現표현으로 들리는가. 그러나 여러분이 無心무심을 통하게 되면 이 말이 그대로 理解이해가 될 것이다.

2026년 7월 12일(일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2)
#7

느낌 공부, 수용과 지향

여러분들이 엔카장에서든지 人生인생살이에서든지, 氣分기분이 상했다고 하면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생각을, 氣分기분을 상하게 한 그 생각을 氣分기분이 좋아지도록 하는 생각으로 바꾸면 된다. 내가 꼬였을 때는 왜 꼬였는가. 꼬이도록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저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꼬여버렸거든요.’ 하는 경우가 經驗的경험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深層的심층적으로 分析분석해 들어가면 끝내는 생각이 그것을 決定결정했음을 理解이해하게 될 것이다.

相對상대방이 나에게 攻擊공격을 해서 화가 났다. 그 때는 생각을 轉換전환해야 한다. 생각 轉換전환은 어떻게 하는가. 우선, ‘저 사람이 나에게 여처저차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구나, 겠지, 감사는 威力 的위력적인 생각이다. 나지사는 우리들의 모든 감정을 純化순화시킬 수 있는 藥材약재가 된다.

그래서 엔카장에서든, 現實현실에서든, 그 무엇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면 그 狀況상황을 ‘구나’로 건너다보면 다 수용이 된다. 그리고 ‘~겠지’ 하면서 그럴 만한 사정 쪽을 考慮고려한다면 理解이해까지 되어서 느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만하니 감사하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그만하니 감사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좋지 않은 느낌을 오래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 어떤 좋지 않은 느낌도 일단 수용하라. 그리고 더 높은 쪽으로 轉換전환해 가라. 수용과 지향, 이것은 느낌뿐만 아니라 人生인생의 모든 局面국면 局面국면에 필요한 기본적인 原理원리의 하나이다.

2026년 7월10일(금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19)
#6

잘 읽고, 잘 생각하고, 잘 理解이해하기

人類인류 精神정신 活動활동의 성과물은 모두 글로 갈무리되어 있다. 모든 宗敎종교, 모든 學問학문, 모든 文化문화는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뜻을 글로 갈무리하고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祈禱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宗敎종교, 學問학문, 文化문화 등등을 理解이해하고자 하면 사람들은 그에 相應상응하는 책을 찾고 그 글을 읽는다. 그러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意味의미할까? 그것은 그 글의 뜻을 생각하고 理解이해한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눈으로 글자만을 쫓아간다고 하면 구태여 그 책을 읽을 까닭도 없다. 그 글이 바이블이든, 四書三經사서삼경이든, 純粹理性批判순수이성비판이든, 宇宙科學書우주과학서이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기’를 要請요청한다.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이라고 지칭되는 불교 經典경전들도 물론 책이고 글이다. 그러니까 불교 經典경전들도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를 要請요청하고 있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宗敎종교인 불교의 經典경전들은 모두 그 글을 읽는 이를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즉, 니까야니까야든지. 金剛經금강경이든지, 般若心經반야심경이든지. 그 經典경전을 읽는 이가 그 글을 읽어가면서 잘 생각하고 그 뜻을 잘 理解이해해 가면 깨달음의 자리에 到達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昨今작금의 한국 불교 風土풍토에서는 생각하는 것은 乾慧地간혜지라고 하면서 三昧삼매만을 強調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三昧삼매 一邊倒일변도三昧삼매만을 強調강조한다면 문자로 쓰여 있는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은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은 그저 乾慧地간혜지集積物집적물이라는 것인가. 經典경전을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經典경전을 읽어가면서 잘 생각하고 잘 理解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三昧삼매를 할 것인가.

2026년 7월 9일(목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09)
#5

離苦得樂이고득락, 불교의 1번 基準기준

불교의 基準기준을 무엇에 두면 좋을까. 佛敎人불교인들, 특히 知識人지식인이나 智慧지혜 水準수준이 높은 佛敎人불교인들은 불교를 살아갈 때 그 基準기준正法정법이 무엇이냐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95퍼센트 이상이 正法정법基準기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法執법집이 나오게 된다. 물론 正法정법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正法정법’에 대한 觀點관점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正法정법이라는 것을 엄격한 基準기준으로 삼게 되면 觀點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相對상대의 것을 正法정법이다, 아니다 하면서 法亂법란이 일어나게 된다. 물론 正法정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편리하다. 그런데 正法정법이라는 基準기준을 힘주어서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니나 덜 바람직하다.

그래서 요점은 正法정법基準기준 1번으로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正法정법은 좋으니까 正法정법 지향을 하되 그것은 두 번째, 세 번째 基準기준으로 하고 첫 번째 基準기준離苦得樂이고득락에 두면 된다. 그리고 불교의 基準기준離苦得樂이고득락이라고 해 놓으면 다른 모든 思想사상, 다른 모든 宗敎종교들과도 함께 어깨동무를 할 수가 있다. 人類인류사의 모든 文化문화 文明문명人類인류幸福解脫행복해탈服務복무하는 道具도구들이 아니겠는가. 불교의 基準기준離苦得樂이고득락이라고 하는 말은 다시 말하면 불교 또한 ‘眞理진리’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離苦得樂이고득락에 도움이 되는 道具도구, 方便방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修練生수련생들에게 ‘眞理진리, 眞理진리하지 말고 方便방편, 方便방편 하라“고 하는 方便방편 불교를 전하고 있다.

2026년 7월 8일(수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08)
#4

經典경전을 배우기 전에 우선 삶을 생각하라

金剛經금강경과 삶. 金剛經금강경이 더 重要중요한가. 삶이 더 重要중요한가. 삶이 더 重要중요하다. 金剛經금강경은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範疇범주 속에 部分集合부분집합으로 있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삶이 中心중심이다. 그러니까 四聖諦4성제 十二緣起12연기 八正道8정도도 삶 次元차원에서 풀어가라. 經典경전에서 삶을 풀어내려고 하지 말고 삶으로부터 經典경전을 풀어가라.

그러면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 사람들의 삶. 70억 人類인류 중에 等覺등각, 妙覺묘각으로 임재하고 계신 분이 몇 분이나 있겠는가. 일단 없다고 보면 된다. 이 말은 妙覺佛묘각불離苦得樂이고득락完成者완성자라는 것이다. 妙覺佛묘각불이 아니라면 그만큼 괴로움 속에 있다는 말이다.

삶이 本質본질은 고이다. ‘나는 幸福행복한데요’ 한다면 그것은 좋다. 그러나 妙覺佛묘각불과 같은 完璧완벽幸福행복 次元차원에서 볼 때는 그 人生인생은 시커먼 地獄지옥이다. 妙覺묘각次元차원에서 볼 때는 人生인생이, 삶 자체가 바로 고이다. 그래서 불교는 고에서부터 人生인생을 풀어간다. 그래서 삶의 目的목적離苦得樂이고득락이라고 한다.

2026년 7월 7일(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07)
#3

◯票공표 치기, 살아 있는 修行수행

맨입으로 할 수 있는 最高최고作善작선이 있다. ‘九類 衆生구류 중생을 다 濟度제도하리라’ 하고 한 번 大願之心대원지심을 일으켰다고 하면 最高최고作善작선을 한 것이다. 九類 衆生구류 중생이시여, 幸福解脫행복해탈 하소서. 나는 그 九類 衆生구류 중생을 다 濟度제도하여 無餘涅槃무여열반에 들게 하리라. 그렇게 祈禱기도 한번 하고 作善작선◯票공표를 쳐도 좋다.

運動운동도 에너지를 쓰면서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음 일으켜서 運動운동 效果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러분들이 130세까지 健康건강, 幸福행복, 長壽장수하게 되어 있다고 관해보라. 그러면 아마 氣分기분부터 좋을 것이다. 참으로 130세까지 長壽장수할 것인지는 모른다 해도 그렇게 관할 때 現在현재 幸福행복하지 않은가. 運動운동 次元차원에서 자신이 130세까지 健康건강 長壽장수하는 모습을 想像상상하면서 늘 幸福행복해지시라. 이렇게 ◯票공표치기 하는 것이 살아 있는 修行수행이다.

2026년 7월 6일(월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06)
#2

生死一如생사일여가 될 때까지

나는 죽음瞑想명상을 ‘온다. 간다. 걸림 없다.’로 한다. 죽음이 왔다고 생각할 때 그 죽음이 두렵다면 그것이 걸리는 것이고 그 죽음을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편안하게 맞이하게 되면 그것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죽음이 왔다고 할 때 돌아보면서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죽음瞑想명상最高최고 버전은 본래 生死생사가 없음을 관하는 것이다. 죽음 瞑想명상初期초기에는 가장 素朴소박하게 무엇인가 해야 할 것들에, 이루어야 할 것들에 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리는 것은 生命생명 자체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죽음이 편치 않았던 歷史的역사적 事例사례가 있다. 秦始皇진시황이다. 그런데 秦始皇진시황보다 열 배나 걸려서 죽음을 꺼려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釋迦牟尼석가모니다. 釋迦牟尼석가모니는 바로 죽음 때문에 出家출가를 한 사람이다. 여러분은 죽음瞑想명상을 거듭해서 ‘온다. 간다. 걸림 없다.’가 되도록 하라. 생하고 있으나 사하고 있으나 똑같이 느껴져야 한다. 生死一如생사일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죽음 瞑想명상을 다 뚫었다고 하는데도 남아 있는 마지막 念體염체가 있었다. 그것은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 肯定的긍정적 心理심리였다. 그 念體염체, 참 不快불쾌하다. 그런 것까지 다 털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捨受사수妙覺묘각인줄 알면 生死一如생사일여가 된다.

2026년 7월 4일(토요일)
유소림(선혜) 기록 · 동사섭 큰스님 법문
오늘의 말씀(104)
#1

全體전체가 한 물건이거늘

나의 平和평화根本的근본적으로 망치고 있는 것은 이 自我자아, 利己心이기심이다. 이 自我자아를 뛰어 넘으려면 非我觀비아관, 無我觀무아관을 하라. 緣起연기가 있을 뿐, 어디에 自我자아가 있느냐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가.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깨끗한 非我觀비아관이다. 重重緣起중중연기 하는 한 有機體유기체가 있을 뿐, 어느 부분을 끊어서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마음이 익어들어야 한다. 이 非我비아吟味음미하면 뼛속까지 좋다.

나의 過去史과거사를 보면 自我자아集中집중되어 있던 한없는 歲月세월이 있다. 지금도 완전히 自我자아集中집중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문득 自我자아集中집중되는 瞬間순간이 있다. 그런 때 얼른 精神정신을 차린다. ‘나’라고 하는 이 自我자아獨立독립實體실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確然확연해지면서 이 存在界존재계自我자아 이야기를 하기로는 너무도 한 덩어리이다. 全體전체가 한 물건이다.

그 때 확 열리는 이 狀態상태, 굳이 ‘나’라는 이름을 붙여야 된다면 그냥 열린 全體전체가 한 ‘나’일 뿐이라는 狀態상태가 된다. 그것을 한 번 느끼고, 두 번, 세 번, 거듭 느껴 보라. 그러면 어느 瞬間순간, 내가 過去과거에 나, 나 나, 하면서 利己的이기적으로 나에게 集中집중하였던 그 時節시절에 대해 그저 回心회심微笑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非我비아 瞑想명상을 하면서 自我자아로부터 훨훨 벗어나라.

훨훨 벗어난 그 마음으로 便宜편의自我자아 놀음을, 菩薩道보살도를 하는 것이다. 宇宙우주重重緣起중중연기 하는 全體전체가 있을 뿐, 어디를 끊고 區劃구획지어서 ‘무엇!’이라고 할 것이 없다. 過去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갔으니 없고, 未來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으며 現在현재의 나는 刹那찰나 無常무상이니 없다. 現在현재의 나는 있다고 하려는 刹那찰나現在현재의 나는 억만 분의 일초 사이에 過去과거로 가버리고 없다. 그러니까 現在현재의 나도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現在현재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것은 무엇인가. 過去과거殘像잔상이다. 자, 非我비아瞑想명상에 동그라미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