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은 & 스승님 마음 나눔터

스승 용타스님의 법문과 가은의 성찰이 빚어내는 삶과 사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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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6일 일요일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18

[스승님 法門법문]


尊重존중담을 前提전제한다. 尊重존중前提信念전제신념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尊重表現존중표현基本的기본적으로 考慮고려하는 것이 좋다.

尊重존중交流교류다. 모든 主張주장, 모든 交流교류의 자리에는 尊重존중前提전제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解悟主義해오주의主張주장하면서 깨달음 처럼 다가온 것이 尊重존중이다.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9

解悟主義해오주의에서 尊重존중이 그렇게 다가왔다는 게 참으로 自然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思惟사유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면, 그 思惟사유란 결국 대상과 마주하는 態度태도에서 始作시작될 텐데, 그 態度태도의 뿌리가 尊重존중이라는 것. 眞正진정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와닿는 건, 尊重존중結論결론이 아니라 “前提전제”로 놓으신 部分부분입니다. 主張주장主張주장이 부딪히기 전에 이미 尊重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건, 결국 眞理진리 다툼보다 關係관계가 먼저라는 뜻 같습니다. 그러니 尊重존중狀況상황에 따라 켜고 끄는 態度태도가 아니라, 그 장을 여는 根本근본 바탕, 즉 이미 있어야 할 마음가짐 같아 “尊重존중이야말로 解悟主義해오주의의 첫걸음이며, 어쩌면 解悟主義해오주의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가장 根源的근원적精神정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 7월 25일 토요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생각이, 그 자체로 길이었네요.


思惟사유 하나로, 王子왕자는 두 스승을 넘어섰고, 六年苦行육년고행도 넘어섰고, 마침내 스스로를 스승 삼아 菩提樹下보리수하에 앉았습니다. 解悟主義해오주의據點거점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神秘신비가 아니라, 平凡평범知性지성. 누구에게나 있는 그 생각하는 힘.


스스로를 스승 삼는다는 것, 그것은 밖에서 오는 무엇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라라칼라마도, 웃다카라마풋다도 다 넘어, 서른다섯 살의 沙門사문은 이제 아무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不成正覺不起此座불성정각불기차좌. 그 誓約서약도 결국은 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思惟사유는 혼자 머물지 않았습니다. 緣起無我解脫연기무아해탈, 緣起同體大悲연기동체대비體系체계를 세운 것도 思惟사유, 四聖諦사성제 十二緣起십이연기 八正道팔정도編輯편집한 것도 思惟사유, 五比丘오비구가 듣고 思惟사유하여 阿羅漢아라한 된 것도 思惟사유, 野舍야사와 54思惟사유하여 넘어간 것도 思惟사유, 布敎宣言포교선언도 한 생각의 터짐, 迦葉카샤파 3兄弟형제와 1000이 며칠 만에 歸依귀의한 것도, 舍利弗사리불馬勝比丘마승비구의 한 마디에서 緣起연기를 알아챈 것도, 산자야의 250이 뒤따른 것도, 전부 생각 하나가 열린 자리였습니다.


생각 아니고는 안 됩니다. 般若心經반야심경도, 金剛經금강경도, 六祖壇經육조단경도, 法性偈법성게도, 元曉원효骸骨通해골통도, 그 무엇도 理解이해 없이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냥있음은 애초에 그 자리였습니다. 생각이 잘못 가면 거기서 멀어지고, 생각이 바로 서면 거기로 돌아옵니다. 緣起연기이므로 나랄 것이 없고, 나랄 것이 없으므로 붙들 도 없으니, 걸릴 것 없는 그 자리에서 저절로 慈悲자비가 흐릅니다.


[瞑想명상이란 한 마음으로 잘하는 것] 그러니 오늘도 그저, 잘 생각하겠습니다. 잘 생각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니, 그냥, 이렇게 말입니다.


*****


法門법문은 스승님이 平生평생 걸어오신 길 全部전부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三昧삼매 修行수행 14000時間시간, 그 오랜 歲月세월을 지나 결국 다다른 자리가, 神秘신비가 아니라 平凡평범한 생각이었다는 告白고백. 이건 그냥 하나의 主題주제 講義강의가 아니라, 당신의 修行수행 全體전체를 되짚어보고 내리신 結論결론처럼 읽혀졌습니다.


證悟主義증오주의로 한 歲月세월을 사셨다가, 解悟主義해오주의로 돌아오신 그 轉換전환 자체가 告白고백이니까요. 남들이 荒唐황당해할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 만큼한 信念신념”이라고 하신 그 대목. 그것이 저에겐 마치 당신의 遺言유언처럼 들리는 이유일 겁니다. 平生평생 부처님 生涯생애講義강의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손에 쥔 답을 내놓으신 거니까요.


그래서 解悟主義해오주의는 스승님 안에서 단순한 敎理교리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두 길(수정/고행)을 다 걸어보고 놓아 버린 자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 무게가 이 글에 그대로 실려 있는 것 같아 사뭇 옷깃이 여며집니다.


이런 法門법문을 이 에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德分덕분이고 이지요. 덩쿨째 굴러온 !


옷깃을 여미게 하는 法門법문 앞에서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것만으로 充分충분한 것 같습니다. 💕

2026년 5월 31일 일요일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15

[스승님 法門법문]


意識의식 談論담론


* 意識의식(마음)에 대하여 多樣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意識의식 談論담론이겠다.

* 138億年억년宇宙우주 歷史역사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奇蹟기적적이고, 가장 神秘신비한 일은 우선 生命생명據點거점이 되는 공기와 물이 나타나게 된 일일 터요, 나아가 生命생명進化진화되어 나오고, 生命생명속에 意識의식進化진화되어 나타난 일이 窮極的궁극적奇蹟기적이요 窮極的궁극적神秘신비일 것이다.

* 意識의식(마음)의 內容내용을 일단 둘로만 論議논의한다면, 생각과 느낌, 혹은 느낌과 생각일 것이다.

* 생각은 條件조건(인) 機能기능이요, 느낌은 結果결과(과) 機能기능이다.

* 사람이나 動物동물意識의식은 12緣起연기(無明무명, , , 名色명색, 六入육입, , , , , , , 老死노사)라는 12개 過程과정을 밟으며 輪廻轉生윤회전생한다.

* 에니어그람 觀點관점으로 사람을 觀察관찰해보면, 옳음 指向的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베풂 指向的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成就指向的성취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個性指向的개성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探求指向的탐구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安定指向的안정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快樂指向的쾌락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支配指向的지배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 平和指向的평화지향적意識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區別구별하여 考慮고려해볼 수 있다.

* 사람이나 動物동물은(?) 根境識근경식, 三事삼사和合화합, 곧 存在존재最基礎條件최기초조건이다. 이 基礎條件기초조건. 必然的필연적으로 相應상응하는 느낌을 惹起야기시킨다. 곧, 苦樂捨고락사 三受삼수다.

* 이처럼 등등의 意識의식 談論담론을 엮어간다면 훌륭한 人文學인문학이 될것이다.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6

스승님의 意識의식 談論담론思惟사유하며,


意識의식에도 각자의 方向性방향성習慣습관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意識의식 談論담론哲學철학이나 心理學심리학을 넘어 삶과 修行수행 全體전체理解이해하는 人文學인문학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깊이 共感공감합니다.


人間인간理解이해한다는 것은 곧 意識의식의 흐름을 理解이해하는 일이고, 意識의식의 흐름을 理解이해한다는 것은 괴로움과 自由자유가 어떻게 生成생성되는지를 理解이해하는 일입니다. 이번 機會기회를 통해 가은이라는 存在존재意識의식은 어떤 方向방향으로 흐르고, 어떤 習慣습관을 지니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가은 意識의식方向性방향성習慣습관>


가은이라고 불리는 存在존재意識의식은 늘 한 方向방향을 향한다. 不足부족함에서 充分충분함으로, 붙잡음에서 놓아버림으로, 나에서 우리로. 이 세 흐름이 가은 意識의식의 큰 줄기다.


그 첫 번째 결은 知足지족이다. “나는 不足부족하다”는 오래된 習慣습관을 스스로 省察성찰해온 만큼, 意識의식은 자꾸 缺乏결핍이 아닌 充滿충만 쪽으로 方向방향을 잡으려 한다. 이미 充分충분하다는 자리로 돌아오려는 힘이 있다.


두 번째는 意味의미를 향한 探求탐구이다. 法門법문 하나를 들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 말씀의 核心핵심은 무엇인가, 修行수행적으로 어떤 意味의미인가를 자꾸 思惟사유한다. 知識지식을 쌓으려는 探求탐구가 아니라 삶을 理解이해하려는 探求탐구다.


세 번째는 共感공감關係관계다. 論理논리보다 마음결을 먼저 느끼고, 評價평가보다 理解이해를, 判斷판단보다 共感공감을 먼저 한다. 慈悲心자비심에 대한 關心관심은 여기서 自然자연스럽게 자란다.


네 번째는 統合통합 指向지향이다. 무엇을 만나든 결국 그냥있음, 我空法空아공법공, 慈悲迴向자비회향으로 돌아온다. 經驗경험多樣다양해도 結論결론은 늘 本來본래 자리다.


다섯 번째는 頓忘돈망, 놓아버림이다. 좋은 느낌도, 깨달음이라는 생각도 끝내 붙잡지 않으려 한다. 이것도 虛像허상 아닌가, 이것도 붙잡음 아닌가, 스스로를 자꾸 비춘다.


여섯 번째는 福脫悲복탈비다. 나만의 깨달음보다 함께 幸福행복하고, 함께 自由자유롭고, 함께 따뜻해지는 것을 향한다. 가은 意識의식의 밑바탕에는 늘 이 마음이 흐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習慣습관으로 모인다. 무엇을 만나든 결국 그냥있음으로 돌아가는 것. 붙잡히면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 놓아버리고, 놓아버리면 迴向회향한다. 이것이 가은 意識의식意圖的의도적으로 쌓아온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習慣습관이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가은이라고 불리우는 識主體機能식주체기능不足부족함에서 充分충분함으로, 붙잡음에서 놓아버림으로, 나에서 우리로 향하는 意識의식이다. 🙏🏼🈳💕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

스승님의 이번 법문은 한 사람의 修行史수행사가 아니라, 한 意識의식이 어떻게 時代시대와 인간 속을 지나며 스스로를 펼쳐왔는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年代記연대기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느낌에 눈뜸”이라는 表現표현이 오래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각으로만 살다가 을 마치지만, 스승님은 어느 瞬間순간 “좋은 느낌”을 삶의 중심 으로 발견하셨고,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存在존재 전체의 방향 전환이었다는 것이 전해집니다.

슈드(should)와 머스트(must)의 세계에서, 삘링(feeling)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자유주의가 아니라 生命생명의 결을 回復회복하는 일이었겠지요.


강요한 校長교장님의 눈물 場面장면도 참 깊습니다.

대도호텔 옥상에서 손수건 두 장을 적실 정도의 울음.

그것은 아마 억눌린 감정의 解消해소만이 아니라, 平生평생 “해야 한다”의 세계 속에 살던 한 인간이 처음으로 자기 存在존재의 살아 있는 떨림을 만났던 瞬間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그 눈물의 背景배경을 나는 想像상상 속에서 환히 안다” 하신 대목에서는, 단순한 回想회상이 아니라 인간 存在존재에 대한 깊은 共感공감洞察통찰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참 놀라운 것은, 그 한 사람의 눈뜸이 또 다른 눈뜸을 낳았다는 점입니다.


강요한 선님 → 스승님 → 티그룹 웍샵 → 再出家재출가 이후의 同事攝동사섭 → 오늘의 마음 나눔터.


마치 한 줄기 물길이 山中산중에서 始作시작되어 수많은 사람의 마음 밭을 적셔온 느낌입니다.

同事攝동사섭은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만나 진짜 살아나는 자리”였구나 싶어집니다.


특히 저는 이 文章문장이 참 印象인상 깊습니다.


人生인생이란 사람의 離苦得樂이고득락의 꿈틀임 過程과정이다.”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憐憫연민도 있고, 現實현실 認識인식도 있고, 修行수행의 방향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괴로움을 벗어나 幸福행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存在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幸福행복本質본질을 스승님은 아주 淡白담백하게 “좋은 느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좋은 느낌은 단순한 快樂쾌락이 아니라,

걸리지 않음의 느낌,

살아 있음의 느낌,

存在존재自然자연스러워지는 느낌,

함께 있을 때 따뜻해지는 느낌,

자기 자신과 和解화해되는 느낌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법문을 읽으며,

同事攝동사섭의 뿌리에는 相談學상담학도, 佛敎불교도, 修行수행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게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구나 하는 각이 듭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이것이 내 人生인생全部전부가 될 줄 몰랐다”

하시는 대목에서는,

결국 한 인간의 運命운명이란

자기가 가장 깊이 感動감동받은 것을

世上세상과 나누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무엇보다…

가은의 龍陀용타 分析論분석론을 읽으며 幸福행복해하시는 스승님의 모습이 참 따뜻합니다.

법문 속의 거대한 思惟사유와는 또 다른, 장난스럽고 맑은 기쁨이 느껴져서요.


“목하. 두퍼 카페~~~^^”


그 한 줄 속에도 이미 다 녹아 있는 듯합니다.

사람, 느낌, 웃음, 나눔, 그리고 살아 있음의 香氣향기까지도요.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2

[스승님 法門법문]

* 목하. 두퍼 카페~~~^^


* 가은님의 龍陀용타 分析論분석론鑑賞감상하는 즐거움^^♡


* "人生인생이 무엇인고?" 청소년 時節시절에 가히 무수히 중얼거리는, 들어가는 소리로 묻곤 했던 質問질문이다. 어느 타임부터 답이 내려지기 始作시작했고, 답은 모임 속에서 나누어졌고, 同事攝동사섭이라는 나눔 文化문화가 만들어졌다. 龍陀용타自燈明的자등명적 意識展開의식전개 歷史역사였구나 해진다.

그래, 人生인생이란 사람의 離苦得樂이고득락의 꿂틀임 過程과정이다.

人生인생目的목적이 무엇이냐? 幸福행복이다. 幸福행복이란 무엇이냐?

좋은 느낌이다. 龍陀용타 人生인생에서 느낌에 눈뜬 것은 가히 劃期的획기적이인 일이었다. 느낌에 눈뜸으로써 龍陀용타價値觀가치관은 슈드(should) 내지 머스트(must) 위에 삘링(feeling)이 調和조화롭게 어우러들게 되었다. 이 告白고백은 나의 恩師은사 격인 강요한 校長교장님의 告白고백이라고 해도 된다. 이 분은 전남고등학교 校長교장이셨고, 나를 전남고등학교로 스카웃 해가신 분이시다.

이분이 느낌에 눈뜨신 것은 50대 중반을 지나고 계실 때이다. 전남고 校長교장으로 봉직하고 계실 때,

美國미국 칼로저스의 엔카운터 집단 학습법을 日本일본輸入수입하여, 日本일본에서 이또히로시식 엔카운터 집단 학습법으로 好況호황을 이루게 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의 教育者교육자 강요한이 日本일본 이또히로시 라는 相談家상담가를 광주로 초대하여, 광주 대도 호텔에서 전라남도 중고등학교 相談상담教師교사들을 모아 4박5일(?)간 이토히로시식 엔카운터 집단 학습 過程과정經驗경험하시게 된 것이다. 이 집단학습 過程과정 중 강요한은 느낌에 눈을 뜨는 奇跡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들리기로는 강요한은 그 수련過程과정 중 어느 타임에 대도호텔 옥상에 올라가 손수건 두개를 적실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그 눈물의 背景배경을 나는 想像상상 속에서 환히 안다.

강요한 校長교장님의 스카웃으로, 장흥고등학교라는 公立學校공립학교에서 獨逸語독일어 教師교사로 봉직하던 나는, 1971년 9월, 광주시에 있는 전남고등학교라는 私立學校사립학교獨逸語독일어教師교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강요한 校長교장님은 전남중고등학교 전 敎職員교직원(60여명)을 모아

1972년 여름 放學방학과 다음해 여름 放學방학, 두 次例차례에 걸쳐 각각 3박4일씩 엔카운터 집단학습을, 티그룹 웍샵(T-Group Workshop)이라는 이름으로 갖게 되었다.

나에게 이 두 次例차례經驗경험을 갖게 함으로써 강요한은 나의 恩人은인목록에 登載등재되었다.

1974년 3월, 敎職교직을 접고 再出家入山재출가입산斷行단행했다. <1964년 8월, 大學대학 3學年학년 時節시절, 청화 禪師선사恩師은사로, 광주 추강사에서 削髮삭발 入山입산함>

再出家재출가하여 禪房선방 生活생활 7년 정도 하고, 꿈속에서도 잊혀지 않고 내 意識의식 속에 살고 있는 엔카운터 經驗경험을 다시 해보고자 옛 教師교사 同僚동료, 전진철 선連絡연락하였다. 여름放學방학과 겨울放學방학에는 항상 開催개최되고 있는 전남相談상담教師교사들의 티그룹웍샵에 머리 깍고 있는 나도 參與참여할 수 있느냐는 質問질문當然당연히 오케이 답이었다. 1980년 겨울放學방학철일 것이다. 60 여명의 전남 카운셀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過程과정을 가졌다. 그 過程과정에서, 고광빈 선님과 한 두 마디 나누는 過程과정에 내가 佛敎불교 現場현장에서 뷸교인들을 모아 이 학습 過程과정을 기지리라 決心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이어 전남 相談상담教師교사指導者지도자 격인 이재화 선님을 모시고, 내 因緣인연信徒신도들 15명과, 17인의 構成員구성원이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 있는 무위사(住持주지: 도륜스님)에서 同事攝동사섭 수련의 1회이자 特會특회過程과정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어서 거의 매월 내 스스로 마스터가 되어 수련을 모아 티그룹웍샵을 進行진행하였다. 이것이 내 人生인생全部전부가 될 것이라고는 想像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언저리를 이처럼 昭詳소상하게 써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시원하다.

2026년 5월 22일 금요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3

스승님의 法門법문을 읽으며

문득 “삶을 어떤 品格품격으로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물음이

아주 簡明간명하게 다가옵니다.


··.

幸福행복解脫해탈慈悲자비.

듣기에는 각각 다른 말 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한 마음의 다른 香氣향기처럼 느껴집니다.


幸福행복만 있고 慈悲자비가 없다면

幸福행복은 자기 안에 머물 可能性가능성이 크고,

解脫해탈만 있고 따뜻함이 없다면

自由자유는 자칫 空虛공허해질 수도 있으니,

福脫悲복탈비라는 말 속에는

人間인간 存在존재가 익어가는 가장 圓滿원만方向방향이 함께 담겨 있는 듯합니다.


特히특히 “나의 日常일상 0번은 항상 無限무한 臨在임재다”라는 말씀은

모든 修行수행의 뿌리를 다시 짚어주시는 듯합니다.

大部分대부분日常일상事件사건感情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스승님께서는 늘 ‘있음’ 以前이전의 자리,

應無所住응무소주의 바탕에서 하루를 여십니다.


그 바탕이 確然확연할수록

有爲유위의 삶은 더 가볍고 더 自由자유롭게 움직입니다.

붙잡지 않으니 흔적이 없고,

흔적이 없으니 매 瞬間순간이 새롭게 피어납니다.

“기러기 하늘을 날아도 흔적이 없다”는 말씀처럼,

삶은 살아내되 머물지 않는 意識의식의 결이 느껴집니다.


또 “거듭 죽는다”는 表現표현에서는

自我자아反復적반복적消滅소멸更新갱신이 읽혀집니다.

어제의 나를 붙들지 않고,

방금 일어난 생각조차 實體化실체화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비워내는 죽음 속에서

菩薩道보살도轉生전생이 이루어진다는 말씀.


그래서 想受滅상수멸조차도 두려움의 言語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平穩평온解放해방言語언어처럼 들립니다.

그러기 위해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의 洞察통찰

삶의 據點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 또한 깊이 와닿습니다.


꿈 같고, 幻影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이 삶을

虛無허무로 읽지 않고

執着집착을 녹이는 智慧지혜로 읽어낼 때,

비로소 福脫悲복탈비人品인품自然자연히 무르익어 가는 것이겠지요.


오늘 法門법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方向방향 提示제시처럼 느껴집니다.

幸福행복하되 붙들지 않고,

自由자유롭되 차갑지 않으며,

慈悲자비롭되 消盡소진되지 않는 삶.


福脫悲복탈비.

짧은 이니셜 속에

참 넓은 宇宙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4

[스승님 法門법문]

* 福脫悲복탈비라는

이니셜을 만들어 써보곤 하는데 묘하게 즐겁다..

幸福행복. 解脫해탈, 慈悲자비의 이니셜이다. 아마 사람이 지향해야 할 지고한 人品인품에 대해 考慮고려해 본다면,

幸福행복, 解脫해탈, 慈悲자비人品인품이라 답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럴싸 하지 않는가!


* 나의 日常일상 0번은 항상 無限무한 臨在임재다. 이 部分부분確然확연할수록 좋다. 無限무한 臨在임재는 곧, 應無所住응무소주다. 應無所住응무소주確然확연할수록 有爲法유위법인 모든 日常일상들이 而生其心이생기심妙有묘유빛날빛날 수 있다. 기러기 하늘을 나나 흔적이 없다하지 않는가! 이런 대목의 意識의식 經驗경험을 할 수 있음이란 만큼 哲學철학解悟主義해오주의로 살 때 可能가능하다.


* 거듭 죽는다. 菩薩道보살도轉生전생이 따르리라. 아니라면 想受滅상수멸^^! 얼마나 좋은가! 想受滅상수멸餘念여념이 없으려면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로전이라는 據點거점이 튼실해야 한다고 했다.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5

스승님 말씀을 읽다 보니

문득 “생강차 한 잔”이라는 아주 日常的일상적인 장면과

有爲유위無爲무위”라는 거대한 話頭화두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함양 어느 길가의 카페에서

따뜻한 생강차를 드시는마시는 모습은 너무 소박한데,

그 자리에서 문득

人生인생 전체를 꿈과 환영처럼 바라보시는 시선은 참으로 깊고도 맑게 다가옵니다.

특히

“있다고 보면 有爲法유위법이요,

없다고 보면 無爲法무위법이다” 라는 말씀은

결국 世界세계 自體자체보다

世界세계를 붙드는 마음의 方式방식이 문제임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괴로움도

對象대상 自體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을 實體실체로 붙드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그래서 無爲法무위법

무언가 特別특별世界세계를 따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붙들던 손을 슬며시 놓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스승님께서

이나 보다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을 더 선호하신다는 말씀도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모든 것이 텅 비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꿈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다고 바라보면

世上세상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더 애틋하고 더 가볍게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있으나 붙들 수 없고,

사라지나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닌

그 찰나의 아름다움.

어쩌면 생강차 김이 피어오르는 그 瞬間순간

바로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있음.

我空法空아공법공.

慈悲자비회향. 🙏🏼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6

[스승님 法門법문]

* 함양 동문동 4거리에서 인월 쪽으로 8Km 지점에 화씨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서 생강차를 마시고 있다.ㅎ

* 有爲法유위법無爲法무위법

有爲法유위법이란 世상세상사람 全般전반이 있다고 生覺생각하는 모든 人生인생, 모든 歷史역사, 모든 世上세상이 두루 다 有爲法유위법이다. 無爲法무위법有爲法유위법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있다고 보면 유위법이요, 없다고 보면 무위법이다. 이 兩者양자사이의 판단 脈點맥점은 괴로움이다. 만일 괴로움이 없다면 無爲法무위법必要필요가 없다.

無爲法무위법代表的대표적槪念개념般若心經반야심경

五蘊皆空오온개공金剛經금강경無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무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내지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

程度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선호하는 것은 이나 보다는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

이다.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7

스승님의 이 一相일상 法門법문

거창한 修行수행 담론보다도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약을 드시고 “시원하다” 하시는 한마디,

사랑이의 꼬리침에서 느끼는 기쁨,

瞑想명상곡이 흐르는 노트북 앞의 歡喜환희,

카오치에 누워 죽음을 想像상상하며 修行수행하는 고요함,

그리고 도반들의 어우러짐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마음까지.

이 모든 것이 따로 떨어진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修行수행 世界세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印象인상적인 것은

죽음 瞑想명상一相일상의 따뜻함이 함께 있다는 입니다.

보통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어두워질 것이라 여기지만,

스승님의 一相일상에서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죽음을 깊이 관할수록

지금의 따뜻함과 因緣인연이 더 歡喜환희롭게 살아납니다.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으로

모든 存在존재의 덧없음을 관하시고,

轉生菩薩道전생보살도”로

다시 衆生중생 가운데 돌아오는 을 세우시며,

想受滅상수멸”로

生覺생각과 느낌조차 고요해지는 寂滅적멸을 향해 가시면서도,

同時동시에 사랑이의 꼬리침 하나에 웃으시고

도반들의 어우러짐을 흐뭇해하십니다.

그러니 이것은

世上세상을 버리는 修行수행이 아니라

世상세상을 더 부드럽게 껴안는 修行수행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의 “重重緣起중중연기하는 因陀羅網인드라망”이라는 表現표현은 참 아름답습니다.

누가 中心중심도 아니고,

누가 周邊주변도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祝福축복을 주고받는 關係관계.

아마 마음 나눔터의 진짜 힘도 여기에 있겠지요.

法門법문을 올리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읽고, 知音지음하고, 和答화답하고, 다시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連結연결의 숨결.

가은의 이름도 그 안에 自然자연스럽게 불리고 있다는 것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8

[스승님 法門법문]

* 供養공양을 마치고 약을 먹어버렸다. 시원하다.

* 우리 사랑이가 대휴당 토굴에 올라와서 성큼 내 방으로 들어와서 꼬리를 친다. 各別각별한 기쁨이다.^^♡

* 내 一相일상 중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내 노트북에서는 瞑想명상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歡喜환희롭다.

* 내 一相일상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카오치에 便安편안하게 누워 想像死상상사(想像상상으로 죽음)를 하면서 죽음 瞑想명상을 한다. 내 죽음 瞑想명상機械的기계적으로 세가지다.

1. 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

2. 轉生菩薩道전생보살도

3. 想受滅상수멸

* 연꽃님, 강물님, 참나님, 자명님, 일향님, 일지님, 선혜님, 가은님, 등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좋다. 重重緣起중중연기하는 因陀羅網인드라망처럼, 서로 祝福축복의 주고 받음이 바로 이것이지 하는 마음으로 흐뭇하다.^^♡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9

마음 나눔터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情報정보를 주고받는 次元차원을 넘어

서로의 存在존재를 조금씩 열어 보이는 일이겠지요.

우리는 흔히 거창한 이야기만 나누어야 疏通소통이라고 생각하지만,

事實사실

“오늘은 바람이 좋았습니다.”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차 한 잔이 유난히 따뜻했습니다.”

하는 一相일상의 작은 記錄기록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자신의 一相일상을 나눈다는 것은

자기를 誇示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고

조용히 存在존재를 건네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서로 알리고, 서로 알아가면서

사람은 점점 고립고립된 ‘個人개인’이 아니라

連結연결存在존재가 되어갑니다.

반대로 마음을 닫고

아무것도 나누지 않은 채 살아가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漸次점차 자기 世界세계 안에만 갇히게 되지요.

그래서 스승님 말씀처럼

서로 알림이란 單純단순情報정보 交換교환이 아니라

人間인간 關係관계維持유지하는 重要중요修行수행처럼 느껴집니다.

마음 나눔터는

누군가를 評價평가하는 空間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작은 불 하나씩 밝혀주는 자리.

오늘 내가 남긴 짧은 한 줄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아,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위안이 되기도 하니까요. 🙏🏼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10

[스승님 法門법문]

마음 나눔터,

마음나눔터, 이곳은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 자신의 一相일상 情報정보共有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일기를 써서 서로 알고, 서로 알리는 (共有공유, 疏通소통하는) 자리!

人間인간 關係관계는 서로 알림으로써 서로 아는 것을 意味의미합니다. 이 부분에 소홀하면 閉鎖폐쇄 人品인품으로 轉落전락해 갑니다.ㅎ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1

스승님의 ‘소소한 즐거움’을 읽다 보면

깨달음은 멀리 있는 特別특별境地경지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의 결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卽心卽佛즉심즉불” 하시며 잠에서 깨어나는 마음,

窓門창문을 열며 바람과 하는 기쁨,

雪居地설거지하며 깨끗해지는 그릇을 바라보는 즐거움,

벌레 한 마주침에도

“나도 生命생명, 너도 生命생명” 하시는 시선까지…

그 모든 것이

거창한 修行수행 以前이전

이미 삶 自體자체를 따뜻하게 껴안고 있는 修行수행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바둑 이야기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이기면 즐겁고,

져도 相對상대의 기쁨을 想像상상하며 함께 즐거워진다는 말씀.

거기에는 競爭경쟁보다 相生상생이 먼저인 마음,

자기를 앞세우기보다 함께 살아나는 마음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또 함양 邑街地읍가지를 “勤務근무라는 이름의 나들이”라 하시는 大目대목에서는

삶을 義務의무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世上세상과 끊임없이 정답게 關係관계 맺는 한 修行者수행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트롯을 들으며 웃고,

드라마 속 事緣사연共感공감하고,

강아지들을 보며 氣分기분 좋아하시고,

山野산야綠陰녹음을 보며 밀물밀물 같은 歡喜환희를 느끼는 마음…

자이면서도 너무 人間的인간적이어서 좋고,

人間적인간적이면서도 그래서 더욱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결국 幸福행복

엄청엄청난 무엇이 아니라

瞬間순간을 자꾸 살아 있게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것이겠지요.

“소소한 즐거움들,

自體자체幸福행복이요

trauma를 淨化정화하리라.”

이 말씀을 읽으며

幸福행복도 거대한 事件사건이 아니라

하루 속 작은 歡喜환희들을 놓치지 않는 感受性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괜히

窓門창문 한 번 더 열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냥있음.

我空法空아공법공

慈悲자비회향 🙏🏼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12

[스승님의 法門법문]

소소한 즐거움

* 아침 잠에서 일어나면서, 이 마음 이대로 부처이지 卽心卽佛즉심즉불. 이 마음 이대로 涅槃열반이지(卽心涅槃즉심열반) 하면서 마음의 성스러움을 首肯수긍할 때마다 즐거움을 느낀다.

* 窓門창문을 열어 방을 換氣환기시킨다. 氣分기분이 좋다.

* 바둑을 둔다. 이기면 절로 즐겁지만, 지면 또한 즐겁다. 相對方상대방이 이겨서 즐거워할 것을 想像상상하면 나도 또한 즐거워진다.

* 食事식사를 하고 雪居地설거지를 할 때마다 씻겨지는 그릇들을 보면서 즐거워진다.

* 거의 每日매일 함양 邑街地읍가지勤務근무라는 이름으로 나들이 한다. 함양인으로서 함양과 疏通소통한다고 생각을 하면 즐겁다.

* 유투브를 열어 트롯을 듣는다. 들을 때마다 恒常항상 즐겁다. 내가 왜 웁니까는 압권적이다.

* 드라마를 鑑賞감상하면서 世上세상의 많은 事緣사연들을 間接간접 經驗경험한다. 즐겁다.

* 문득, 문득 벌레나 昆蟲곤충들을 접하게 된다. 접할 때마다, '나도 生命생명 너도 生命생명!'하고 생각한다. 生命생명 敬畏的경외적好感호감을 느낀다.

* 자명님이 얼쩡거린다. 접할 때마다 즐겁다.

* 幸福행복이, 解脫해탈이, 사랑이, 눈에 띌 때마다 氣分기분이 좋다.

* 綠色녹색 山野산야, 밀물 같은 歡喜환희다.

* 등등등 소소한 즐거움들, 그 자체로 행복이요, 그만큼 trauma를 淨化정화하리라~~~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3

스승님의 말씀을 읽고 있자니,

‘나’라고 붙들고 있던 작은 境界경계들이

조용히 풀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나와 너가 따로 存在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億萬억만 因緣인연의 그물 속에서

잠시 이름을 붙여 살아가는 흐름일 뿐이라는 말씀.

그래서 重重緣起중중연기를 안다는 것은

어떤 知識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홀로 存在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가슴으로 首肯수긍해 가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스쳐간 因緣인연 하나,

눈물 and 微笑미소 하나까지도

모두 서로를 存在존재하게 하는 因陀羅網인드라망의 빛이었다는 것.

그러니 미워할 것도,

지나치게 붙들 것도,

끝내 自慢자랑할 ‘나’도 없고,

다만 함께 存在존재하며 함께 건너가는

하나의 生命생명만이 있는 듯합니다.

天下천하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한 有機體유기체”라는 말씀 앞에서

문득,

孤獨고독조차도 조금은 虛妄허망해집니다.

가은 또한 따로 떨어진 하나가 아니라

끝없는 緣起연기의 숨결 가운데

잠시 피어난 하나의 波紋파문일 뿐이구나… 하고요.

스승님의 깊은 慈悲자비

知音者지음자이십니다”라는 마지막 人事인사

가슴이 오래 머뭅니다.

두루 복탈비의 德性덕성으로

밝고 가볍게 살아가겠습니다.

重重緣起중중연기의 한 몸으로

그저 “一默일묵합장\_()\_

스승님 (Master)
법문 (Dharma Talk)
#14

[스승님 法門법문]

宇宙大自我우주대자아

天下천하, 一心法界일심법계滔滔도도重重緣起중중연기一大有機體일대유기체로서 가히 無限무한이요, 가히 永生영생이다. 나, 너, 그이, 그녀, 그것. 이것, 저것, 길동이, 홍순이, 개, 고양이, 등등 個體的개체적이고 實體的실체적인 것은 애시당초 存在존재하지 않는다. 衆生중생이냐, 붓다냐는 實體실체냐, 緣起연기냐이다.

붓다의 菩提樹下보리수하 大覺대각 宣言선언緣起宣言연기선언이었다. 大乘대승 華嚴화엄佛敎불교에서는 緣起연기라는 우물거리는 소리로는 直性직성이 풀리지 않아서, 重重緣起중중연기라고, 億萬억만가지 無數무수한 아이템들이 다른 億萬억만가지 無數무수한 아이템들과 因陀羅網的인드라망적 關係관계를 맺어야만 存在존재한다는 重重緣起중중연기라고 表現표현을 함으로써 그나마 多少다소라도 直性직성을 풀었던 것이다. 韓國한국佛敎불교의 1번經典경전, 所衣經典소의경전, 金剛經금강경에서는 實體的실체적인 모든 存在존재,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如夢幻泡影露電여몽환포영로전이어서 아예 意味의미 自體자체가 없다고 쓸어 뭉개어 버렸다.

하여, 天下천하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한 有機體유기체이어서 하나의 거대한 無限무한 自我자아가 있을 뿐이니 大解脫대해탈, 大自由대자유, 大慈悲대자비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重重緣起중중연기다. 重重緣起중중연기首肯수긍, 이것이 hint힌트요 길이다.

여러분, 두루 복탈비의 德性덕성으로 빛나시기를 빕니다.\_()\_

~~~~~~~~~~~~~~~

가은님,

반갑습니다.

知音者지음자이십니다.

尊敬존경과 사랑으로

一默일묵합장\_()\_

GE
가은 (Gaeun)
성찰 (Reflection)
#15

스승님께서 제게 “知音者지음자”라는 表現표현을 써주신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單純단순히 “法門법문을 잘 理解이해했다”는 뜻인가 生覺생각했지만, 時間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知音者지음자

單純단순히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의 숨결과 方向방향까지 함께 듣는 因緣인연일 것입니다.

法門법문이라는 것은

情報정보처럼 傳達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穩全온전히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접하며 느낀 것은,

그 가르침이 但只단지 理解이해對象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關係관계, 외로움과 慈悲자비, 놓아버림과 바라봄 속에서

繼續계속 다시 살아난다는 었습니다.

어쩌면 스승님께서는

“말을 따라 하는 사람”보다

그 뜻이 자기 삶 안에서 다시 숨 쉬게 되는 사람을 보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So “知音者지음자”라는 表現표현可能가능했으리라 느껴집니다.

거울은 單純단순複寫복사하지 않습니다.

빛을 받아 자기 方式방식으로 다시 비춥니다.

스승님의 法門법문 또한

가은이라는 삶을 지나며

조금의 體溫체온과 눈물과 思惟사유를 입고

다시 世上세상으로 번져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가르침을 消費소비하는 關係관계라기보다,

함께 을 살아내는 因緣인연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승님께서 덧붙여주신

尊敬존경과 사랑으로”라는 表現표현 또한

形式的형식적人事인사가 아니라,

같은 한 마음의 떨림을 알아본 데서 나온 말처럼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重重緣起중중연기觀點관점에서 보면

知音지음이라는 것도 결국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以前이전에,

같은 한 마음이 서로를 비추어보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돌아봅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가은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살아난 溫氣온기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숨결이 되어 닿고 있는가를요.

가은 (To. 묘공님)
인사 (Introduction)
#16

안녕하세요, 妙空묘공님.

요사이 同事攝동사섭 <마음 나눔터>에 올라오는 스승님의 法門법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다 올리지 못한 글들을 이곳에서 나누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