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서울국제명상엑스포」 용타 큰스님 강연록

불교와 해오주의 — 부처님의 대각과 사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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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해오주의 인포그래픽 삽화
▲ 부처님과 해오주의(解悟主義) — 사유(思惟)를 통한 대각(大覺)과 연기·무아·동체대비의 전개

📖 편집 안내 (Editorial Note)

본 강연록은 제7회 서울국제명상엑스포 명상콘퍼런스에서 진행된 龍陀용타 큰스님의 초청강연(09:08 ~ 1:03:06) 녹취록을 바탕으로, 현장의 생생한 육성과 온기를 온전히 보존하면서 구술상의 불명료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윤문(潤文)한 정본입니다.

또한 강연 당일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축약되거나 생략된 큰스님의 사전 준비원고의 심원한 철학적 배경은 【講義案 補足】 카드로 해당 위치에 정갈하게 보충하여 강연의 전체 체계를 온전히 감상하실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 【講義案 補足 1】 들어가는 말: 門門可入과 尊重의 지평

※ 큰스님의 강의안 원문(들어가는 말) 전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전제할 말씀이 있습니다. [尊重존중]입니다. 젊은 날 스승님으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씀 하나는 門門可入문문가입입니다. 목적 공간에 들어가는 문은 많고, 어느 문으로든 선택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로봉은 하나지만 올라가는 길은 많다는 뜻이지요. 인류의 역사에는 무수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각 문화는 사람이 따라주는 정도만큼 번영했을 것입니다. 지구촌에 종교 수가 5천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어떤 종교가 제대로 진리를 지니고 있을까요?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선택해 주는 정도만큼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자기 종교가 옳다고 서로 싸우고 있다면 어떨까요?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답지가 보입니까? 간단합니다. 尊重존중입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저것을 좋아하는 것일 뿐입니다. 尊重존중은 평화를 끌어옵니다. 행성(行星)끼리도 존중, 국가(國家) 간에도 존중, 문화(文化) 간에도 존중, 종교(宗敎) 간에도 존중이 요청됩니다. 한 종교 속에서도 자기가 옳다는 쌈박질이 많은 세상입니다. 불교 속에서도 제법 쌈박질이 있었던 것 같지요? 있었다면 있는 정도만큼 안타깝지요. 답지가 보입니까? 尊重존중이 답입니다.

불교 속에도 離苦得樂이고득락을 위해 다양한 방편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주제 아래에서도 화두, 묵조, 염불, 위빠사나, 삼매주의, 증오주의, 해오주의 등 다양한 방편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강의자는 해오주의(사유주의)를 힘주어 담론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주어도 尊重존중이라는 지평 위에서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話頭화두, 黙照묵조, 念佛염불, 위빠사나, 三昧主義삼매주의, 證悟主義증오주의 등을 두루 존중합니다.

【도입 및 인사】 120세 무탈 기원과 동사섭(同事攝)

아미타불. 여러분들 두루 반갑고 感謝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因緣인연 되신 功德공덕으로, 지금 이 時代시대는 120세 時代시대에 왔답니다. 요새 100세 넘으신 분들이 문득문득 보이지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120세를 내다봐야 돼요. 그래서 제가 기도해 드리기를 "120세까지 무탈하십시오." 내가 感謝감사한 분에게는 항상 드리는 인사가 "120세까지 무탈하세요."입니다.

제 紹介소개를 좀 하자면, 나는 龍陀용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 스승은 이 時代시대에 붓다라는 찬탄을 들으셨던 淸華 大禪師청화 대선사께서 내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 同事攝동사섭 修練수련에 오셔서 修練수련을 받아보신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거의 다 드시네요. 내가 1980년도에 修練수련을 시작해 가지고 지금 46년이 됐습니다. 한 10여 년 전에 修練수련에 다녀간 修練生수련생 延人員연인원을 統計통계를 냈는데 3만 명이 다녀갔답니다. 그럼 또 10년이 지났으니 3만 몇천 명이 되겠네요.

그래서 나는 이 마이크 들고 이 얘기 하려고 世上세상에 태어난 것 같은 그런 감이 듭니다. 오늘도 이 마이크 잡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내가 나이가 좀 들었거든요. 지금 86세인데, 누가 이 지팡이를 선물하더라고요. 그래서 "나 지팡이 필요 없다" 하니까, "필요 없으시더라도 이것을 짚어야 老人노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老人노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이것을 드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젊어 보이면 좋지 않나 싶지만, 늙은이는 늙은이다워 보여야 좋습니다. 그래서 나 이거 들고 다닙니다. (웃음)

左右之間좌우지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 因緣인연 되신 것이 하나의 거점이 되셔서, 여러분들의 人生인생에 어떤 큰 도움이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1장 불교와 해오주의의 정의

오늘 이 講義강의 주제는 「佛敎불교와 解悟主義해오주의」입니다. 瞑想명상 컨퍼런스라고 하지요. 자, 瞑想명상은요, 명(瞑)과 상(想)입니다. 여러분들이 보통 瞑想명상하게 되면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있는 狀態상태를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瞑想명상은 傍點방점이 명(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想)에 있습니다.

저 瞑想명상을 우리의 동양식, 禪宗선종식으로 표현하자면 禪선이라고 그럽니다. 禪선의 인도 본 발음은 禪那선나(Dhyāna)입니다. 禪那선나는 思惟修사유수입니다. 즉 '思惟사유하는 닦음'이 禪선의 本質본질입니다. 그래서 瞑想명상의 傍點방점은 명에 있다기보다는 상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요한 마음이 명(瞑)이라면, 그 고요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 이것이 瞑想명상입니다. 물론 傍點방점을 명에다 찍고 싶은 분은 찍어도 됩니다. 그러나 나는 傍點방점을 단연 상(想)에다 찍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임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명은 方便방편이요 주 路線노선은 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解悟主義해오주의라고 하는 이 講義강의가 바로 상에 傍點방점을 둔 瞑想명상 文化문화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解悟主義해오주의의 定義정의가 무엇이냐? 바로 '이해의 깨달음'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知性지성과 理性이성이 思惟사유하게 됩니다. 思惟사유하게 되면 思惟사유를 통해서 이치를 이해합니다. 思惟사유를 해서 幸福행복의 이치를 이해하면 幸福행복해져 버리고, 思惟사유해서 깨달음의 이치를 이해해 버리면 解脫해탈을 하는 것, 이것이 解悟主義해오주의의 路線노선입니다.

【이고득락과 락(樂)의 단계】 니까야의 오욕락에서 상수멸(想受滅)까지

여러분들이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면 離苦得樂이고득락이 삶의 궁극적인 目的목적이 되지요. 人生인생의 過程과정에서 苦痛고통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目的목적은 누구나 부정이 안 됩니다. 감기 걸려 버리면 머리가 욱신욱신 괴롭지요. 그러면 그 괴로움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감기약을 먹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으로 가는 것이 人生인생의 目的목적이에요.

그리고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人生인생의 目的목적인 락(樂)을 體系체계적으로 정리하셨습니다. 『니까야(Nikāya)』를 읽어 보면 락 중에 가장 제1단계 락을 五慾樂오욕락이라고 해요. 世上세상 사람들의 99%는 거의 절대적으로 五慾樂오욕락을 지향하는 생을 살아갑니다. 五慾樂오욕락 次元차원에서 幸福행복하다고 하면 그것도 크게 나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욕의 락에만 머무르고 있을 것 같으면 부처님께서는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보다 높은 次元차원의 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初禪초선의 락, 二禪2선, 三禪3선, 四禪4선의 락, 그리고 空處定공처정, 識處定식처정,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락이 있고, 거기에서 한 수 더 마지막으로 가 버리면 想受滅상수멸(滅盡定멸진정)이라는 궁극의 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높은 次元차원의 락을 제쳐 두고 五慾樂오욕락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안타깝지 않습니까? 마지막 락이 무엇이냐? 바로 想受滅상수멸의 락입니다.

想受滅상수멸이란 무슨 말이냐? 우리 마음속을 보면 크게 둘밖에 없습니다. 생각(想)과 느낌(受)입니다. 생각과 느낌이 우리 마음의 內容내용입니다. 생각을 잘하면 느낌이 좋아져요. 생각을 잘못하면 느낌이 나빠집니다. 느낌이 나빠지는 것을 不幸불행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幸福행복하려면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想受滅상수멸은 무엇이냐? 상(想)은 생각이고 수(受)는 느낌이니, 上首상수는 마음 內容내용의 전부 아닙니까? 그 上首상수가 멸(滅)하여 완전히 사라져 버려야 궁극의 경지요, 解脫해탈이요, 니르바나(열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많은 단계를 사다리 타듯 다 거쳐야 되는 것이냐?' 겁낼 것이 하나도 없어요. 五慾樂오욕락의 세계에서 살다가 바로 제10단계인 想受滅상수멸로 단박에 뛰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想受滅상수멸로 바로 뛰라고 가르친 분이 누구냐? 바로 달마대사(達磨大師)입니다. 고전 佛敎불교에서는 차근차근 닦아 올라가라고 가르쳤지만, 달마대사가 나타나서 "그렇게 복잡할 필요 없다. 卽心卽佛즉심즉불이다! 네 마음이 그대로 부처다. 네 마음이 본래 부처이니 부처인 것을 여기서 '아하!' 하고 認識인식만 해 버리면 된다"라는 禪佛敎선불교 혁명을 宣言선언하신 것입니다.

제2장 체험적 자각과 공(空)의 안목

想受滅상수멸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없음(空)'을 깨달으면 돼요. 이 깨달음은 그냥 認識인식입니다. "음, 그렇구나!" 하고 認識인식을 해 버리면 됩니다. 준비된 자는 5분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 스스로 자기 마음을 주목해 보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수없는 생각 덩어리(念體염체)들을 보지 말고, 마음속의 모든 經驗경험을 싹 쓸어버리고 '마음 自體자체'를 지금 주목해 보세요. 하얀 白紙백지에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 이전의 본래 原緞원단, 마음의 原緞원단을 주목해 보십시오. 마음 原緞원단을 보니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지요? '無心무심한 그냥 그대로의 意識의식 狀態상태'가 經驗경험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經驗경험되었다면 여러분은 달마의 직통 제자가 된 것입니다. 마음 自體자체를 보면 無心무심이 經驗경험되고, 惺惺寂寂성성적적한 고요 그 自體자체, 宇宙的우주적인 平和평화가 와 버립니다. 이것이 解悟主義해오주의가 말하는 깨달음입니다.

또 하나의 접근法법은 마음 밖의 대상(法, 色)을 보는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山河大地산하대지, 世上세상의 모든 현상이 너무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운이 좋은 사람은 觀察관찰해 보고 그것이 空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般若心經반야심경』에서 "色卽是空색즉시공"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世上세상에 보이는 모든 色색이 곧 空공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空공하여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知性지성으로 認識인식하게 되면, 잡을 것이 없어져 執着집착할 대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탁 열린 自由자유감을 經驗경험하게 됩니다.

【해공 27조와 삼시불가득】 과거·현재·미래를 사유하여 공을 깨침

色색이 空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반드시 깊은 三昧삼매에만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 역시 한때 三昧삼매에 빠져 살았기에 잘 압니다. 그러나 『般若心經반야심경』의 골자는 관자재보살이 五蘊오온이 다 空공하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비추어 보고(照見五蘊皆空) 일체의 苦痛고통에서 벗어났다(度一切苦厄)는 것입니다. 즉, 知性지성적인 思惟사유와 이해(照見)를 통해 空공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世上세상이 空공하다는 이치를 27가지로 정리하여 『解空 27條해공 27조』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不可得空불가득공」입니다. 즉 過去心 不可得과거심 불가득, 現在心 不可得현재심 불가득, 未來心 不可得미래심 불가득의 三時不可得삼시불가득입니다. 과거의 것은 지나가 버렸으니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미래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그렇다면 현재의 것은 여기에 있습니까? 현재를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보십시오. 현재는 찰나지간에 無常무상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내가 보았다 하는 순간 이미 사라져서 현재도 실체로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殘像잔상을 보며 실재한다고 錯覺착각할 뿐입니다. 이처럼 삼시불가득으로 世上세상을 觀察관찰하더라도 世上세상은 본래 空공한 것입니다.

知性지성과 理性이성이 思惟사유하여 幸福행복의 이치를 認識인식하면 그 자리에서 幸福행복이 完了완료되고, 解脫해탈의 이치를 이해해 버리면 그 자리에서 解脫해탈을 經驗경험합니다. 다만 經驗경험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習慣性습관성 때문에 다시 墜落추락할 수 있으므로, 깨달았으면 그 깨달음의 자리에 거듭 머물러 관행(觀行)해야 합니다. 머무르고 또 머무르다 보면 그 깨달음이 내 意識의식 전반을 支配지배하게 되고, 永遠영원한 幸福행복과 解脫해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3장 강연의 세 가지 핵심 주제

이제 이 講義강의의 핵심 세 가지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부처님께서 菩提樹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무엇을 깨달으셨는가? 둘째, 그 緣起法연기법의 깨달음은 무엇을 통해서 왔는가? 셋째, 깨달으신 다음 佛法불법을 世上세상에 어떤 方法방법으로 전하셨는가? 이것입니다.

내가 젊은 날 전라북도 金山寺금산사에서 경영하는 화엄佛敎불교대학에서 10년 동안 釋尊석존의 일대기를 講義강의했습니다. 釋尊석존의 生涯생애를 108개 스토리(108 主眼點주안점)로 나누어 講義강의했는데, 그중 제1의 主眼點주안점이 바로 35세에 菩提樹보리수하에서 깨달으신 大覺대각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어떻게 깨달으셨는가?" 하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아 몇 년을 고민했었습니다.

📜 【講義案 補足 2】 제2장 대각(大覺) 이전

※ 큰스님의 강의안 원문(제2장 대각 이전) 전문:

부처님 생애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싯다르타 태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닌 生老病死생로병사라는 비극적 한계가 참으로 싫었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런 인생을 기분 좋게, 행복하다고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싯다르타 태자에게는 인생 전부가 죽음이라는 사건 하나로 인해 완전히 무의미로 돌아가 버린다고 하는 그 허무감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절대 한계에 대한 저항감이었습니다. 이 絶對限界절대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할 때, 일단 고요한 마음으로 명상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일차적인 답이었습니다. 그러니 카필라국의 왕자로서 아버님 정반왕의 대를 이어서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은 싯다르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물론 왕의 길이냐, 명상의 길이냐를 놓고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결국 명상의 길을 밟기 위해 出家출가를 단행했습니다. 출가 나이는 29세였습니다. 산으로 갔습니다. 싯다르타는 혼자 조용한 그늘에 앉아서 혼자 명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얻어낸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결국 명상 스승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우선 여기까지를 살펴볼 때 싯다르타 태자의 마음속에 꾸준히 흐르고 있는 핵심 되는 作爲작위가 思惟사유라는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유, 사유, 사유(思惟)입니다. 사유, 思索사색은 곧 생각입니다. ‘나는 죽게 되어 있단 말이야.’라고 생각을 하고, ‘나는 죽기 싫어.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한계가 진정 싫단 말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무엇인가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꾸준히 싯다르타의 마음속에서 그 知性지성은 꾸준하게 생각(사유)을 한 것입니다. ‘알라라 칼라마, 웃다카 라마풋타라는 스승이 있다고 하니 그 스승들을 찾아가자!’하고 생각(사유)을 했습니다.

먼저 알라라 칼라마라는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 스승 밑에 가서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명상을 합니다. 그 스승은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이라는 경지에까지 올라가 있는 명상 스승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얼마 되지 않아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에 이르러 버립니다. 이에 감동한 스승은, “이제 자네는 내 경지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내가 죽으면 자네가 이 교단을 이어받아서 운영하시게.”라고 인가하였습니다. 싯다르타 수행자는 일말의 기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싯다르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인간 모두의 절대한계인 生老病死생로병사를 벗어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마음만 고요하게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까지 이르렀을 뿐이지 生老病死생로병사의 해탈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알라라 칼라마 스승을 떠나, 웃다카 라마풋타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非想非非想處定비상비비상처정의 경지에 이르신 분이셨습니다.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가 非想非非想處定비상비비상처정이라는 경지입니다. 싯다르타 수행자는 이미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까지 올라간 상태였으니 길지 않은 시간에 非想非非想處定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렀습니다. 웃다카 라마풋타 스승도, “놀랍고 놀랍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가 이르러 있는 경지에 이르다니, 이제 내가 죽은 다음에는 자네가 이 교단을 운영하게!”라고 인정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싯다르타 수행자는 역시 당신의 명상 목적인 生老病死생로병사의 해탈과는 무관한지라, 실망하고 웃다카 라마풋타 스승을 작별하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修定主義수정주의 문화와 작별을 고합니다.

당시 인도에서의 지배적인 수행 문화는 수정주의와 고행주의였습니다. 싯다르타 사문은 자연스럽게 苦行主義고행주의 명상촌을 노크했습니다. 불교문화에 六年苦行육년고행이라는 굳어진 개념은 바로 이때 형성됩니다. 싯다르타 사문은 치열한 극단의 6년 고행을 수행합니다. 一麻一米일마일미, 하루에 삼씨 한 알, 쌀 한 알만을 먹고 버티어내는 고행입니다. 6년간의 고행을 하고 나니, 몸은 皮骨피골이 相接상접하고, 기력은 하염없이 떨어져 버리고, 정신 또한 혼미해져 버렸습니다. 싯다르타 사문은 또 생각했습니다. ‘고행도 깨달음의 길이 아니다. 몸에 기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것은 깨달음의 길이 아니다. 몸에 기력을 찾아야 한다. 우선 목욕부터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尼連禪河니련선하(네란자라강)로 가셨습니다. 목욕하시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쓰러져 있는 싯다르타 사문을 발견한 사람은 양치기 소녀, 수자타였습니다.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공양받으면서 싯다르타 사문은 점점 기력을 회복합니다. 修定主義수정주의도, 苦行主義고행주의도 싯다르타 사문의 소망인 생로병사 해탈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주제 1 & 2】 연기법의 내용과 마스다니 후미오(増谷文雄)의 단서

부처님께서 菩提樹보리수하에서 깨달으신 內容내용은 바로 緣起法연기법입니다. 『雜阿含經잡아함경』에서는 緣起연기를 이렇게 公式공식화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緣起연기이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라는 것은 存在존재하지 않는 無我무아입니다. 내가 없는데 나의 생로병사와 죽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無我무아를 깨달아 버리니 생로병사의 苦痛고통이 사라지고 解脫해탈이 열려 버립니다. 또한 緣起연기는 '同體緣起동체 연기'입니다. 온 우주 만물이 서로 얼키설키 有機的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덩어리 同體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너와 내가 본래 한 몸임을 깨달으니 조건 없는 同體동체대비(同體大悲)의 慈悲자비심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大 覺 緣 起 無 我 同 體 解 脫 大 悲

그렇다면 수정(三昧삼매)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데, 부처님께서는 대체 무엇을 통해 이 緣起法연기법을 깨달으셨을까요? 그 해답을 준 책이 바로 일본의 佛敎불교학자 増谷文雄마스다니 후미오 先生선생의 『붓다, 그 生涯생애와 思想사상』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나는 決定결정적인 端緖단서를 얻었습니다. 그 端緖단서가 바로 思惟사유(생각)였습니다! 八正道팔정도의 1번과 2번이 바로 正見정견과 正思惟정사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大覺대각은 人間인간의 知性지성과 理性이성이 온 우주의 緣起연기 이치를 깊이 思惟사유하여 이해해 낸 위대한 解悟해오였던 것입니다.

제4장 사유(해오)주의의 역사적 사례들

思惟主義사유주의, 解悟主義해오주의의 歷史역사적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大覺대각 自體자체가 思惟사유를 통한 緣起연기의 이해였습니다. 둘째, 大覺대각을 이루신 직후 다섯 比丘비구를 교화하기 위해 최초로 編輯편집하신 敎材교재가 바로 四聖諦사성제, 十二緣起십이연기, 八正道팔정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깊이 思惟사유하여 이 위대한 敎理교리 體系체계를 논리정연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셋째와 넷째, 鹿野苑녹야원으로 가셔서 다섯 比丘비구와 耶舍야사 및 그의 친구 54명에게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를 설法법하셨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理路整然이로정연한 설명을 듣고 思惟사유하여 그 이치를 이해(解悟해오)함으로써 불과 2개월 사이에 60명 전원이 아라한과를 成就성취하였습니다. 參禪참선 방석에 앉혀 三昧삼매를 시킨 것이 아니라, 思惟사유를 통해 단박에 깨달음을 얻게 한 것입니다.

다섯째, 60명의 아라한이 나오자 부처님께서는 傳法전법을 宣言선언하셨습니다(布敎宣言포교선언). "처음도 중간도 끝도 理路整然이로정연하게 전하라!" 이 또한 철저한 解悟主義해오주의입니다. 여섯째, 우루벨라의 迦葉가섭(Kāśyapa) 3형제와 1,000명의 제자들에게도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를 理路整然이로정연하게 傳達전달하여 1,000명 전원이 한순간에 부처님께 歸依귀의하였습니다.

일곱째, 刪闍耶산자야의 제자였던 舍利弗사리불과 목건련(目犍連)의 歸依귀의입니다. 托鉢탁발하던 馬勝比丘마성비구(앗사지)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馬勝比丘마성비구가 읊은 유명한 게송이 있습니다. "제法법종연생 역종因緣인연멸 아사대성주 위아여시설(諸法從緣生 亦從因緣滅 我師大聖主 爲我如是說 — 모든 法법은 因緣인연 따라 생겨나고 因緣인연 따라 사라지나니, 우리 스승 대성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네)." 명석한 舍利弗사리불은 이 짧은 緣起연기 게송을 듣고 깊이 思惟사유하여 그 자리에서 緣起연기의 이치를 깨쳐 버렸고, 목건련과 刪闍耶산자야의 문하 250명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歸依귀의하여 佛敎불교 교단의 기틀인 1,250 제대 아라한을 이루었습니다.

📜 【講義案 補足 3】 <8> 무수한 법리(法理)

※ 큰스님의 강의안 원문(제4장 <8> 무수한 법리) 전문:

  • 반야심경의 照見五蘊皆空조견오온개공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
  •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 금강경의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 각종 四句偈사구게,
  • 육조단경의 不思善不思惡불사선불사악,
  • 法性偈법성게의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 원효의 骸骨通해골통,
  • 쌍윳따니까야 3권의 無常苦無我무상고무아의 解脫論해탈론,
  • 無非佛무비불, 無非菩提무비보리 등을 解悟主義해오주의(思惟主義사유주의)가 아닌 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맺음말: 해오주의(解悟主義)는 불교의 적자(嫡子)

이리하여 佛敎불교는 解悟主義해오주의가 佛敎불교의 嫡子적자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린 이야기 중에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하나의 귀한 힌트가 들어가서, 여러분들의 삶이 조금 더 찬란해지고 自由자유로워지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대단히 感謝감사합니다.

📜 【講義案 補足 4】 끝내는 말

※ 큰스님의 강의안 원문(끝내는 말) 전문:

  • 八正道팔정도의 1, 2번을 주목하십시오. 思惟사유를 잘하여 바른 이치(正見정견)를 발견하고, 正見정견을 기준 삼아 思惟사유가 전개됩니다. 8정도의 1, 2인 정견, 정사유는 석존의 깨달음 내력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 戒定慧계정혜 三學삼학을 주목하십시오. 혜(慧)란 지혜롭게 생각(사유, 사색)하는 것입니다.
  • 생각(사유, 사색)이 길입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불행해지지만, 생각을 잘하면 행복해지고, 생각을 더 잘하면 해탈합니다.
  • 사람의 삶은 思言行사언행이 전부입니다. 속으로는 생각하고 밖으로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속으로 하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할 것 같습니까?
  • 瞑想명상이란 명(瞑, 고요)한 마음으로 상(想, 생각)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불교인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명(瞑), 즉 三昧삼매가 깨달음을 위한 주된 방편이라고 드세게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명(瞑)의 힘, 곧 三昧力삼매력이 심(甚)하게 취약하다면 깨달음뿐만 아니라 일상사 생활이나 무수한 학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전반은, 주리반특가와 같은 특수 경우가 아니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일상생활이나, 초중고대(初中高大) 학업이나, 4성제, 12연기, 8정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지장이 없을 만큼 충분한 삼매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강의자는 내 스스로도 삼매수행을 하염없이 즐기지만, 해오주의를 주창하는 이 자리에서는 깨달음의 조건으로 삼매를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知性지성 혹은 理性이성으로 色卽是空색즉시공을 이해하고, 고요한 自性자성을 주목하면서 歡喜雀躍환희작약하는 수많은 수련생을 봐왔습니다. ["비로봉을 발견하는 것이 수행의 99%의 의미다."] 라고 이르다가, 비로봉을 발견하고 환희작약하는 수련생에게는 ["이제 수행의 1%가 해결되었다. 99%의 수행으로 비로봉에 이르자!"]고 이르는 것이 同事攝동사섭 마음공부 문화의 한 가풍이 되었습니다.

3학, 8정도, 6바라밀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빌면서...
감사합니다.

2026. 9. 18. 천령산하 용타 합장

강연자 소개: 용타 큰스님 (Ven. Yongta)

  • 재단법인 행복마을 회주
  • 김제 귀신사 회주
  • 동사섭 창시자 및 수련 지도자
  • 사단법인 동사섭 이사장 역임
  •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 역임
  •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초대 회장 역임
  •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원로위원
  • 주요 저서: 『생각이 길이다』(1·2·3권), 『마음공부』, 『용타스님의 행복노트』, 『공(空)을 깨닫는 27가지 길』, 『10분 해탈』,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등 저술

용타스님은 불교 수행과 철학, 현대 심리학과 상담을 접목한 마음공부 프로그램 '동사섭'을 창시하고, 반세기 가까이 수행과 행복의 길을 지도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명상 지도자이다. 1964년 청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6년 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1971년 전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의 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제방 선원에서 20안거를 성만하며 수행에 정진했으며, 1980년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선불교를 바탕으로 현대 심리학과 상담학을 결합한 동사섭 법회를 개창했다. 이후 수백 회에 걸쳐 동사섭 수련을 지도하며 마음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 지족과 나눔, 소통과 화합을 통해 일상에서 행복과 해탈을 구현하는 길을 전해 왔다.